정치권에서 정치가 복원된 건 꼭 한 달 만이다. 지난해 12월5일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의 처리를 놓고 여야 보좌진이 좁은 기획재정위 회의장 복도에서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후 국회에선 제대로 된 협상이 없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싸움으로 한 달여를 허송했다. 타협보다는 회의장 장악과 탈환이 여야의 주요 관심사였다. 몸 던져 사선(死線)을 돌파하는 투사와 상대의 마음을 후벼파는 독설가가 협상가보다 각광받았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수렁 속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무법국회 해소를 위한 제도 정비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한 달 동안 벌어진 공성전과 백병전은 '누가 회의실을 차지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초반의 승리는 한나라당쪽이었다. 조세 관련법 개정을 놓고 여야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던 12월5일 한나라당은 기획재정위 소회의실과 전체회의실 입구를 먼저 봉쇄했다. 뒤늦게 달려온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책상으로 문을 찧으며 '탈환'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나라당은 세입과 관련된 조세법안의 처리를 통해 예산안의 주요 쟁점과 처리 시점까지 자신들의 페이스로 가져갔다.

압권은 역시 12월18일 외교통상통일위였다. 전날부터 회의실 점거 기회를 엿보던 민주당 측이 방심한 새벽에 한나라당 의원과 보좌진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근 것이다. 민주당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며 전기톱 쇠망치 소방호스 소화기 등 다양한 '무기'가 동원된 쟁탈전은 '국회야말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이후는 민주당 페이스였다. 민주당은 18일 국회의장실 점거를 시작으로 19일에는 정무위 행정안전위 회의장을 차지했으며 20일에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까지 확보했다. 이때부터 상임위 활동을 포함한 모든 국회 일정을 물리력으로 저지했다.

26일 아침에는 본회의장과 로텐더홀까지 점거해 '입법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30일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이후 국회 사무처 소속 경위와 방호원들이 일부 시설물에 대한 탈환을 시도했지만 강력한 저지에 밀려났다.

지난달까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던 김형오 국회의장과 여당은 이 같은 점거에 속수무책이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