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외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 (4) 인프라웨어 곽민철 대표ㆍ안종오 부사장…컴에 미친 동생, 가수 꿈접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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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인프라웨어의 곽민철 대표(35 )와 안종오 부사장(36).보유하고 있는 회사 주식 평가액만 각각 100억원대에 이르는 성공한 젊은이다. 창업 10년 만에 회사를 세계 4대 휴대폰 브라우저업체로 성장시켜 이뤄낸 성과다. 하지만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로 시계를 되돌리면 이들도 취업 걱정을 해야했던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다. "창업 동기요? 외환위기를 전후해 취업도 안 되고 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
인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곽 대표는 만족할 만한 취업 자리를 얻지 못해 1997년 한국외대 경영정보대학원에 진학했다.
함께 창업한 안종오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실제 하고 싶었던 것은 가수의 길.그렇지만 음반시장이 좋지 않아 결국 군대에 가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일류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뒤를 받쳐줄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졸업 후 선택의 여지는 좁기만 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창업이다. 곽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 정도의 '컴퓨터광'이었다. 자연스럽게 유일한 밑천인 컴퓨터 기술을 토대로 한 창업을 시도했다. 서울 방배동 동네 선후배 사이로 잘 알고 지내던 안 부사장도 군 제대 후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1997년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인프라웨어다. 곽 대표가 23세,안 부사장이 24세 때였다.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으로 세계적 검색엔진인 구글을 창업했던 페이지와 브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오히려 창업시기는 구글보다 1년 빨랐다.
창업은 했지만 존재는 한동안 미미했다. 회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1999년 무렵.한국HP 직원이 "HP가 웹 사이트 화면을 프린터 용지에 딱 맞게 출력하는 솔루션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해 준게 계기가 됐다. 인프라웨어는 바빠졌다. 얼마 안 돼 딱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웹브라우저 원천기술은 인프라웨어의 성공토대인 휴대폰 브라우저 기술의 밑천이 되기도 했다.
안종오 부사장은 "창업 후 2년간 안 해본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게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인프라웨어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닷컴 붐이 꺼지면서 인프라웨어도 흔들렸다. 이때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 인프라웨어의 히트작 '휴대폰 브라우저(폴라리스)'다. PC에서 인터넷을 쓸 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를 쓰듯이 휴대폰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때 필요한게 모바일 브라우저다.
곽 대표는 "인맥이나 학벌이 좋지 않다보니 소프트웨어 용역개발을 지원할 때도 불리한 점이 많았다"며 "기술력을 입증하려면 용역이 아니라 우리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들어낸 게 모바일 브라우저"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2년에는 노키아를 밀어내고 SK텔레콤에 브라우저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SK텔레콤,LG텔레콤에 브라우저를 독점 공급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70%로 끌어 올렸다. 최근엔 중국 미국 등으로 제품을 수출하며 세계 4대 휴대폰 브라우저업체로 도약했다.
인프라웨어는 최근 자회사 티비스톰을 통해 미국 칩개발업체 시그마디자인 등으로부터 3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을 앞서 내다보고 휴대폰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성공했듯이 차세대 시장인 인터넷TV(IPT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리 노력한 결과다.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미국 시그마디자인의 칩에 국산 소프트웨어를 결합,전 세계 TV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휴대폰에 이어 TV 시장까지 석권해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곽 대표는 "외환위기,닷컴버블붕괴 등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위기 뒤에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라며 "시장을 앞서 내다 보고 준비해 모바일 분야에서 성공했듯 IPTV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김태훈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taehun@hankyung.com
인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곽 대표는 만족할 만한 취업 자리를 얻지 못해 1997년 한국외대 경영정보대학원에 진학했다.
함께 창업한 안종오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실제 하고 싶었던 것은 가수의 길.그렇지만 음반시장이 좋지 않아 결국 군대에 가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일류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뒤를 받쳐줄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졸업 후 선택의 여지는 좁기만 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창업이다. 곽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 정도의 '컴퓨터광'이었다. 자연스럽게 유일한 밑천인 컴퓨터 기술을 토대로 한 창업을 시도했다. 서울 방배동 동네 선후배 사이로 잘 알고 지내던 안 부사장도 군 제대 후 의기투합했다.
이렇게 1997년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인프라웨어다. 곽 대표가 23세,안 부사장이 24세 때였다.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으로 세계적 검색엔진인 구글을 창업했던 페이지와 브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오히려 창업시기는 구글보다 1년 빨랐다.
창업은 했지만 존재는 한동안 미미했다. 회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1999년 무렵.한국HP 직원이 "HP가 웹 사이트 화면을 프린터 용지에 딱 맞게 출력하는 솔루션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해 준게 계기가 됐다. 인프라웨어는 바빠졌다. 얼마 안 돼 딱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납품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웹브라우저 원천기술은 인프라웨어의 성공토대인 휴대폰 브라우저 기술의 밑천이 되기도 했다.
안종오 부사장은 "창업 후 2년간 안 해본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게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인프라웨어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닷컴 붐이 꺼지면서 인프라웨어도 흔들렸다. 이때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 인프라웨어의 히트작 '휴대폰 브라우저(폴라리스)'다. PC에서 인터넷을 쓸 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를 쓰듯이 휴대폰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때 필요한게 모바일 브라우저다.
곽 대표는 "인맥이나 학벌이 좋지 않다보니 소프트웨어 용역개발을 지원할 때도 불리한 점이 많았다"며 "기술력을 입증하려면 용역이 아니라 우리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들어낸 게 모바일 브라우저"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02년에는 노키아를 밀어내고 SK텔레콤에 브라우저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SK텔레콤,LG텔레콤에 브라우저를 독점 공급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70%로 끌어 올렸다. 최근엔 중국 미국 등으로 제품을 수출하며 세계 4대 휴대폰 브라우저업체로 도약했다.
인프라웨어는 최근 자회사 티비스톰을 통해 미국 칩개발업체 시그마디자인 등으로부터 3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을 앞서 내다보고 휴대폰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성공했듯이 차세대 시장인 인터넷TV(IPT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리 노력한 결과다.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미국 시그마디자인의 칩에 국산 소프트웨어를 결합,전 세계 TV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휴대폰에 이어 TV 시장까지 석권해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곽 대표는 "외환위기,닷컴버블붕괴 등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위기 뒤에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이라며 "시장을 앞서 내다 보고 준비해 모바일 분야에서 성공했듯 IPTV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김태훈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