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작가(그리고 러너).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산문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임홍빈 옮김,문학사상 펴냄)에서 묘비에 새길 문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이 작가일 뿐 아니라 러너였다는 사실도 명기하고 싶다고 말할 만큼 달리기에 각별한 애착을 표현했다.

하루키는 1982년부터 달리기를 해왔다. 거의 매일같이 록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하고,매년 적어도 한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100㎞ 울트라마라톤과 철인 삼종경기까지 완주했다.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1979년 등단한 뒤 전업 소설가가 되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강 유지를 위해서였는데,그나마 20~30분 뛰다보면 심장이 쿵쾅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곧 달리기는 글쓰기처럼 그의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다'는 그가 달리기를 통해 문학을 이야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일례로 그는 살찌기 쉬운 편이라 늘 운동과 식이조절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자신의 체질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본다.

'타고날 때부터의 재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혹은 무엇을 해도) 자유자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샘물이 퐁퐁 솟아나듯 문장이 자연스레 솟아올라 작품이 완성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러한 타입은 아니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이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가는 동안,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

달리기와 소설의 유사점을 짚어내며 털어놓는 단상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소설가의 자질 중 재능과 달리 집중력과 지속력은 후천적으로 획득하고 향상할 수 있다면서 이를 근육 훈련과정에 비유한다.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

또 젊었을 때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들이 나중에는 맥을 못 추는 '문학적 조루'에 대해 언급하며 '육체가 시들고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마는',즉 창작력이 고갈되는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자신은 계속 달린다고 고백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