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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인사철에 다시 읽는 蕭曹之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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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철이다. 관가에는 장관이 한번 바뀌면 부하 직원들이 속된 말로 두어 달은 죽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넘치는 포부와 열정을 이기지 못한 새 장관이 휴일도 없고 낮밤도 없이 출근하기 때문이란다. 기세등등한 신임의 눈에는 유능했던 전임자도 '게으른 월급 도둑'으로 비치기 십상이고,전임이 한 것을 모조리 뒤엎어 놔야 제대로 일한 것처럼 만족한다. '소규조수(蕭規曹隨)'

    소하(蕭何)가 법을 만들고 조참(曹參)이 그대로 따랐다는 말이 있다. 소하와 조참은 한(漢) 고조 유방(劉邦)과 동향인 패현의 하급 관리 출신으로,유방이 거병(擧兵)한 초기부터 따라 나선 최측근이었다.

    서로 빈한할 때 둘도 없이 친했던 두 사람은 초한전쟁 승리 뒤 논공행상 때문에 사이가 벌어졌다. '한번도 전장에서 말을 달린 일 없이 그저 붓과 입만 놀린(未嘗有汗馬之勞 徒持文墨議論)' 소하가 일등 공신이 된 반면,70여 군데 부상을 입으며 혁혁한 무공을 세운 조참은 뒤처졌던 것이다. 고조는 소하를 승상으로 삼아 곁에 두면서 조참은 산동지방 제후국의 상국으로 멀찌감치 떼 놓았다.

    혜제 2년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참은 상경을 서둘렀다. "내 곧 승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과연 사령장을 지닌 황제의 사자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천하가 다 알 만큼 사이가 나빴지만,소하가 죽으면서 자신을 후임으로 천거할 것을 조참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임 승상 조참은 오로지 전임 승상이 만든 법을 충실히 따를 뿐 무엇 하나 고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언행이 질박하고 꾸밈없는 이를 발탁하고, 눈에 보이는 실적과 명성만 탐하는 관리들을 내칠 따름이었다. 그 나머지는 밤낮으로 술만 마셨다. '승상이 그래서야 되겠느냐'며 누가 간언이라도 할라치면 좋은 술을 대접하고,또 말을 꺼낼 듯하면 다시 술을 권하고 대취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그냥 돌아가게 만들었다.

    승상이 이렇게 정무를 돌보지 않자 황제는 '선제(先帝)의 원훈(元勳)이라고 감히 나를 경시하는가'라며 화가 났다. 우회적으로 경고를 보내도 허사,마침내 황제는 승상을 불러 면전에서 힐문했다. 《사기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는 청년 황제와 늙은 승상의 문답을 이렇게 전한다.

    조참 : 폐하와 선제 중에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제 : 짐이 어찌 선제를 넘보겠는가.

    조참 : 그러면 저와 소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혜제 : 그야 그대가 못한 것 같군.

    조참 : 그렇다면 능력이 못한 두 사람이 정치를 하는데,뛰어났던 앞사람이 남긴 것을 지켜서 잃지 않도록 애쓰고 여분의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혜제 : 그대가 옳다. 그만하라.

    조참은 승상 재임 3년 만에 죽었는데,역사는 소하와 조참 두 승상 시대를 '소조지정(蕭曹之政)'이라고 해서 제국의 기틀을 세운 '좋았던 시절'로 평가하고 있다.

    원래 조참이 배운 정치 기술은 황로술(黃老術)이었다. 당시에는 제도주의파인 공자보다 '무리하지 않음(淸靜無爲)'을 치도(治道)의 으뜸으로 치는 황제(黃帝) 노자의 사상이 성행했는데, 후일 황제 대신 장자를 넣어 노장(老莊) 사상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조참의 허허실실이 여태후 일족의 전횡에 대한 보신책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진시황제의 혹정(酷政)과 전란 뒤의 민력휴양(民力休養)에 크게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경제 불황은 과욕과 과속이 원인이다. 새해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해서 세상이 잔뜩 움츠려 있다. 탐욕의 생채기를 치유하고 침잠해야 할 계절에 의욕을 불태우고 날뛰면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지게 된다. 이번 인사철에 신임이 된 이들은 긴 안목으로 겸허하게 생각하고 절대 무리할 일이 아니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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