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외자를 끌어와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을 일구기까지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조선 산업의 역사는 감탄스러울 따름이죠.제가 역사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

지난 40여년 동안 선박 세일즈맨으로 세계 무대를 누벼온 황성혁 황화상사 대표(70)가 최근 한국 조선산업의 발전과정 등을 담은 영역본 'LET THERE BE A YARD'(E&B Plus)를 펴냈다.

1965년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과 함께 한국기계(현 대우중공업)에 입사한 황 대표는 1972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가 초대형유조선 건조에 착수한 데다 세계적인 조선소를 만들 것이란 얘기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1989년 현대중공업 영업담당 전무를 끝으로 퇴사하기까지 그는 그리스 노르웨이 영국 인도 등 세계 각국을 누비며 선박 400여척(4억t 규모)을 수주,조선입국의 역사를 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선박영업을 하려면 배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상대국가의 문화와 전통에도 훤해야 한다"며 "배를 팔기위해 나이지리아에서 파리가 득실거리는 전통 육포를 받아 먹어가며 그곳 교통부 차관을 설득했던 일 등이 기억난다"며 웃음을 보였다. 황 대표는 이 책에 조선소를 지을 때의 에피소드,기술도입 얘기,각국의 비즈니스 문화,선박판매 협상 얘기,정주영 회장과의 인간적인 교감 등을 담았다.

2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위더비출판사의 제의로 지난해 말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값이 40파운드(약 8만원)로 비교적 높게 책정됐지만 며칠 만에 초판이 다 팔렸다. 그러나 황 사장은 얼마 후 판권을 회수해 한국 출판사 E&B Plus에 넘겼다. 활자,타이틀,페이지네이션 등 퀄리티가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위더비 측에서"책이 잘 팔리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판권을 고집했지만 책을 많이 파는 것보다 제대로 된 책을 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황 사장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황 사장의 책은 세계 조선업계 사람들에게 한국의 조선산업 역사를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대학 교재로 읽혀야 한다는 말도 나올 만큼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0년부터 선박 중개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내 유일한 자산은 세계 각국에 있는 형제 같은 친구들"이라며 "지금도 한국 조선산업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디라도 마다 않고 찾아다닌다"며 긍지를 보였다.

글=최규술/사진=허문찬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