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직접개입 대신 상시감시 체제 … 지루한 게임 될듯

"외환위기 때와 달리 문제가 서서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브리핑에서 이같이 말했다. 10년 만에 닥친 기업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때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엔 위기가 갑자기 닥치면서 기업들이 한꺼번에 부실화됐고 정부의 처분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솎아낼 기업이 확실하게 보였고 정부가 살생부를 마련해 칼을 댈 수 있었다. 은행에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는 의사 결정도 명쾌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많은 기업들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졌을 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기업들이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도 선제적 조치,즉 '프리(Pre)-워크아웃' 차원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부실 여부가 아직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자칫 정부가 나서 옥석을 가렸다가는 사후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재무상태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만 해도 외환위기 당시에는 평균 400~500%였는데 지금은 100% 안팎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의 발달로 은행 여신을 수천억원씩 가져다 쓴 기업도 많지 않다.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진행해야 할 은행들도 건강한 상태다. 지난 몇년간 사상 최대 수준인 수조원대 순이익을 내온 시중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1~12%로 외환위기 당시 8%에도 못미쳐 퇴출됐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환위기 때는 은행이 부실화돼 주주들이 정부의 책임 추궁과 경영 간섭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부실화되지도 않은 은행들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주주들이 반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구조조정은 부실화된 기업들을 패키지로 묶어 죽을 곳과 살 곳을 신속하게 골라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루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민간 채권단 위주의 상시구조조정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야 큰 칼(퇴출) 하나 차고 나가 시원하게 휘두르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이번 구조조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지루하게,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차례 차례 케이스별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