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 <정치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어차피 핵심 법안은 2월에 처리하는데 해외에서 좀 쉬었다 오는 게 큰 문제냐.국회에서 가자니까 가는 것 뿐이다. (A의원)"

폭력과 욕설로 대치하던 여야 의원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이좋게 손을 맞잡는다. 이달 중순부터 의원들의 해외 일정이 줄줄이 시작되는 것이다. 9일부터 31일까지 소집된 임시국회는 3일 만에 서둘러 마무리하기로 했다. 민생 법안 처리에는 별 의지도 없던 의원들이 외유 일정은 '칼같이' 준수하는 모양새다.

기획재정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9일부터 열흘간 이탈리아와 터키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각국 경제단체장과 교류를 위해서라지만 1월 임시국회 첫 소집일부터 의석을 비운 데 대해 비판이 만만찮다. 가장 첨예하게 대치했던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는 동남아시아 방문을,법사위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현지 로스쿨 시찰 일정을 잡아놨다.

'입법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홍준표 한나라당,원혜영 민주당,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는 15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등을 방문키로 했다가 9일 취소했다. 홍 대표 측은 "운영위 차원의 일정이었으나 여론이 나빠 없던 것으로 했다"며 "초청받았던 20일 오바마 취임식도 못 갈 것 같다"고 전했다.

의원들의 외유 소식이 한 인터넷 포털에 올라오자 'wtg'라는 필명의 네티즌은 "한바탕 전투 뒤 격려성 이벤트인가. 국내서 싸움박질하는 것보다 나으니 임기 끝날 때까지 차라리 해외에 있으라"는 의견을 올렸다. 'fgh7701'은 "싸움질하는 모습이 해외에 방송됐는데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못 간다"고 꼬집었다.

국민들도 해외 의정활동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지루했던 입법전쟁 속에서 일정을 속수무책으로 미뤄온 의원들의 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여야 협상으로 애써 소집한 임시국회를 후다닥 마무리하고 해외로 뜨는 모양새는 누가 봐도 좋지 않다. 상당수는 관광성 일정이 섞여 있어 혈세를 '노는 국회'에 퍼붓는다는 비판도 있다. '민생'을 걸고 비장하게 싸우던 여야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외유에 나서는 모습에 국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래도 해외로 가야 한다면 이참에 '해머'로 상징되는 우리 국회의 한심한 이미지를 직접 듣고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