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우량주 널린 요즘은 가치투자 적기, 최소3년앞 내다보고 기업가치 따져야

수년내 유망업종 자동차가 가장 유력, 장기투자때도 분할매도 잊지 말아야


'장기 투자가 정답'이란 말에는 수긍하면서도 실제로 장기 투자하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은 드물다. 아이러니이지만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더 모순적이다. 모두들 '장기 투자는 고통'이라는 통념에 깊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 폭락을 목격하고는 장기 투자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더 늘고 있다.

최근엔 "위험자산인 주식은 역시 장기 투자 대상이 못 된다"고 말하는 투자자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장기 투자에 대한 잘못된 접근 방식 때문이라는 게 허남권 신영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의 지적이다. 잘 계획한 장기 투자는 고통이 아니라 여유를 가져다 준다는 게 그의 운용철학이다.

허 본부장은 국내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과 함께 '가치투자 전도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신영투신운용에서 13년째 한결같이 가치투자를 고수하고 있는 장기 투자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가치투자란 가치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가치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수익가치와 현재 자산가치만 따져 철저하게 종목의 가격이 싼지 비싼지를 따진다. 보수적인 가치투자자일수록 투자하는 기업의 경영 환경이 미래에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종목을 고른다. 스스로 매우 보수적인 가치투자자로 분류하는 허 본부장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다고 해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가치투자자에게도 고통이다. 허 본부장은 그래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그려보면서 가치주를 발굴한다.



"적어도 3년 이상을 보고 해당 기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려보면서 투자해야 해요.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회사 가치가 좋아지길 기다리면 수익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러기위해선 기다리는 즐거움을 주는 회사를 골라야죠.주가가 하락할수록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

그는 성공적인 장기 투자 사례로 현대중공업을 예로 들었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시세가 분출했는데 신영투신운용은 2002년에 사들인 후 기다린 끝에 몇 배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주가 급락의 여파를 허 본부장도 비켜가지 못했지만 특유의 여유로움은 잃지 않았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41% 빠지는 동안 신영투신운용의 주식형 펀드 수익률도 32% 하락했죠.벤치마크 대비 선방했지만 힘든 한 해였어요. 작년 주가 급락은 국내 기업가치 하락 때문이라기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 쇼크로 인한 수급 공백에 따른 것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다시 말해 주가가 터무니 없이 많이 빠진 종목들이 속출한 거죠.장기로 보는 가치투자자에겐 오히려 기회입니다. "

허 본부장은 이런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올 들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기에 비탄력적인 통신주나 필수소비재 같은 내수주 유틸리티 등의 비중이 높았지만,올해는 낙폭 과대 경기민감주나 정보기술(IT)주 자동차주 철강주 석유화학주 중소우량주 우선주 등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3년 후의 미래를 다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3년 후 유망 업종으로 자동차주를 서슴없이 꼽았다. 허 본부장은 "과거 일본과 경쟁해 살아남았던 조선주나 반도체주가 시세가 좋았지만 앞으로는 중국 기업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고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업들의 주가가 좋을 것"이라며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어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분할 매도'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허 본부장은 "2007년까지 수년 동안 연간 기준으로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모두들 '고(Go)'만 외쳤다"며 "작년 급락장서 뼈저리게 느껴야 할 교훈은 분할 매수만큼이나 분할 매도에 충실했어야 했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목표 시점이 오면 10분의 1씩 분할 매도하면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장기 투자하면서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한때 주가가 50만원대까지 급등했지만 신영투신운용은 3만원대에 주식을 산 다음 10만원대부터 분할 매도했다고 전했다. 적립식 펀드 투자자의 경우도 분할 환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허 본부장은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나설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스스로도 집을 제외한 전체 자산의 90%를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그 또한 올해 주식시장이 방향은 없고 등락이 심한 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의외의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단기 유동성이 최고 수준인데 투자할 데가 없어요. 경기가 불투명해 수급 공백이 나타나고 있죠.하지만 이는 경기가 살아나는 기미만 보여도 시장이 폭발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지수가 반토막난 상황에서 4분기 실적이 안좋았다는 점은 거꾸로 실적이 확인되면 주가가 올라갈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

가치투자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는 '신영'이란 조직에서 20년간 머물고 있다. 그는 이 또한 가치투자 차원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몸값이 올랐다고 해서 이직하면 직업 생명도 짧아집니다. 멀리 보면 한 조직에 남는 것이 더 이득이죠.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 수익이 아닌 적정 수익을 목표로 잡고 넓고 길게 봐야 합니다. 최근 시장은 6개월이나 1년 가지고 승부할 수 없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식에 투자하면 눈앞의 이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지만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기 원칙대로 누적적으로 이익을 쌓아가는 투자자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

글=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사진=양윤모 기자yoonm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