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신용위험 평가기준이 지난해 말 마련됨에 따라 92개 건설회사와 19개 중소 조선사 등 111개사의 운명을 가를 채권단 평가가 진행중이다. 조만간 평가 결과가 나오면 그동안 말만 무성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왕에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라면 가능한 신속하게 매듭지어 부정적인 파장(波長)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부실을 키우는 것보다는 회생 불가능한 기업을 신속히 솎아내는 것이 관련업계는 물론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원 및 퇴출을 결정할 평가 결과가 나오더라도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을 요인이 여전히 산재해 있는 까닭이다. 우선 구조조정의 핵심인 등급(A~D) 산정 결과에 대해 채권단 내에 이견이 있을 경우 이를 조정할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가 이해조정을 맡고 있지만 등급 평가 결과를 직권으로 조정할 권한은 없다. 채권단 내에서 견해가 갈리면 구조조정은 초기 단계부터 공전(空轉)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도 애매하다. 정부는 구조조정은 일단 채권단에 맡기고 정부는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을 통해 전체 구조조정의 강도와 방향을 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만 한다는 방침이지만 관련업계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당국은 1분기까지 300대 건설사, 50여개 중소 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등 다른 업종으로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 속도와 시스템으로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의 역할을 재정립,명확한 업무 범위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의 직권 조정권을 도입하는 등 구조조정의 걸림돌을 서둘러 제거해야 할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구조조정에는 속도가 생명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