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국회의원 yscho2008@hanmail.com>

"얘야,내 손 좀 보거라,이렇게 애기같이 작아졌구나. "어느 날 친정어머니의 꿈 속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오셔서는 손을 보여주며 하신 말씀이라고 어머니는 스님 앞에서 얘기를 꺼내셨다. 스님과 우리는 아마도 외할머니가 다시 환생을 하셨나보다고 해몽을 했다. 생전에 그토록 넉넉하셨던 인품을 지닌 외할머니가 미처 윤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셨다는 게 나는 못내 아쉬웠다.

어릴 때부터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나는 특히 외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고2 겨울 방학을 맞으면서 느닷없이 대입준비를 한다는 각오로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기 위해 새벽 6시에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도서관엘 가려고 깜깜한 추운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니 서럽기도 했지만,도대체 매일 아침 천근만근 몸이 제대로 일어나지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그 새벽에 밥을 먹여 보내시겠다고 새로 밥을 해 주셨지만,여고생들이 흔히 그렇듯 그 시간에 도대체 입맛이 나지를 않았다. " '너구리 라면'을 끓여주지 그랬어…"라며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투정을 부리고,밥에는 손도 안 대고 집을 나섰더니 그 다음 날에는 식탁에 밥도 차려져 있고 '너구리 라면'도 끓여져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버스정류장에 가면서 문득 집을 뒤돌아보았다. 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정류장 쪽을 내려다보고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도서관에 가기 시작한 지 3주는 지났었다. 이제까지 매일 할머니가 저렇게 내가 버스정류장 가는 걸 내려다보고 계셨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그때는 철이 덜 들어 아침에 밥투정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외할머니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건 보셨는데,졸업하는 건 못 보고 돌아가셨다. 간간이 고2 겨울 방학과 외할머니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웃으며 얘기를 시작하다가도 곧 눈물이 나왔다. 20년도 더 흘러서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얘기를 꺼내도 이내 같은 대목만 되면 또 눈물이 나왔다.

딸에게는 엄격하고 치열하기를 바라셨던 친정어머니도 나의 딸들에게는 천생 외할머니다. 내가 이렇게 쉬운 시험 문제를 틀려 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펄펄 뛰면,친정어머니는 한없이 관대한 표정으로 "아직 어린데 어떻게 그렇게 매번 잘하길 바라니"하신다. 애들이 "할머니,나 털목도리"하면 하루가 채 지나기가 무섭게 털목도리를 짜 애들 손에 쥐어 주신다.

외할머니의 손녀 사랑에 친정어머니는 약간 비껴계셨었다. 나 역시 친정어머니의 손녀 사랑에 약간 비껴 있다. 같이 있는 절대 시간이 짧아 애들을 거의 전화로 키우다시피 하는 나는 두 딸에게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엄마가 지금은 비록 바쁘지만,은퇴하면 지금 외할머니가 너희들 봐주듯이 나도 너희 애들을 봐 줄게.지금은 엄마를 조금만 봐줄래?" 언제나 바쁜 엄마의 민망한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