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겹 세 겹의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뚫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세계 100대 로펌 중 하나인 미국의 듀앤 모리스(Duane Morris)에서 유일한 한국인 파트너가 된 염정혜 변호사(40 · 사진)는 "로펌 변호사 생활을 거듭할수록 700여명 변호사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여성이란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올라갈 때 회사 내부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컫는'유리천장'을 두 번 세 번 깨야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리천장을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그리고 한국여성 특유의 저돌성으로 뚫었다. 로펌 입사 10년 만에 승진확률이 10%라는 파트너에 당당히 오른 것.

대학 졸업 때까지 미국에 연수는커녕 여행 한 번 가보지 않았던 그가 유창한 영어로 법정을 호령하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자리를 꿰차기까지의 과정은 '알파걸'의 성공기에 다름 아니다.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한 염 변호사는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소설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도의 자연스런 선택.2년 동안 다부지게 기자생활을 하던 그는 1995년 미국 출장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인생의 항로를 바꾸게 된다. "불현듯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택한 게 미국 로스쿨행.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미국 로스쿨 시험 준비서를 사서 달달 외운 끝에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합격했다.

로스쿨 입학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 번째 도약을 시작했다. 로스쿨에서 동생뻘 미국 학생들과 3년간 부대끼며 생존영어와 법률영어를 치열하게 익혔다. 판례법 위주의 미국 법학체계도 그의 적성에 맞았다. 법리로 무장해 법정에서 격렬하게 논쟁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 것.염 변호사는 판례를 씹어먹을 듯 외우면서 영어실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어는 달라도 논리적으로 글을 써간다는 것은 한국어나 영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힘들지 않고 오히려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듀앤 모리스에 들어간 것은 1999년.지금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엔 눈물이 나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한번은 준비서면 기한을 연장받기 위해 법원에 혼자 나갔다 곤욕을 치렀다. 담당 판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당사자들끼리만 합의했다며 "When did you start wearing the robe?(언제부터 판사복을 입기 시작했느냐)"라고 화를 냈다. 한마디로 '당신이 판사냐"고 비꼰 것.당황해하던 그는 법복이라는 뜻의 'robe'단어를 자신이 언제부터 변호사를 시작했느냐는 의미로 잘못 해석해 로스쿨 졸업식 때부터라고 답변했다. 법정이 웃음바다로 변했지만,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는 10년간 기업분쟁 팀에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염 변호사는 "창의력과 공격성이 부족하다는 한국인에 대한 통념을 깨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다각도로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고 말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됐지만 염 변호사는 쉴 틈이 없다. 파트너가 된 이상 자기고객을 끌어오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그는 "일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유리천장이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일에 열정을 갖고 매진한다면 깨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며 "매번 새로운 도전을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