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장은 간부 회의 때마다 벌떡 일어서지 않은 적이 별로 없다. 브레인스토밍 회의가 일장 훈시로 끝날 때가 많다. 전무,부사장 시절만 해도 아랫사람 의견을 잘 듣는 편이었다. 몇 년 전 사장이 되면서 달라졌다. 그가 평소 하는 말."간부들 역량을 길러주려면 참고 기다려야 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딴 생각들을 하는지 내 아이디어의 반도 못따라오고…."

최고경영자(CEO) 모임에서 만나는 다른 회사 사장들도 그와 같은 생각이다. 그들이 뜻을 같이하는 의견."결국 리더가 이끌어야 하는 거야."

K사장 같은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시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장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아래로부터,또는 밖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

숫자가 말해준다. 1000개의 아이디어 가운데 100개 정도만이 실행할 만하고 그 가운데 투자할 만한 것은 10개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의 중간급 벤처캐피털사는 한 해 평균 5000개 이상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다. 이렇게 고르고 골라 투자하고,그나마 운이 좋아야 겨우 한두 개 회사가 빛을 본다. 구글이나 e베이가 그렇게 탄생했다.

큰 성공을 거두려면 잘못된 것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가능성 있는 것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최근 10년 사이 세계 기업 지도를 바꾼 회사들은 전부 새로 나타난 회사들이다. 그 회사들은 젊은 경영자들이 친구뻘 되는 직원들과 함께 끊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질이 아니라 양일지 모른다.

혹 당신은 직원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내가 만들어주면 실행하는 것이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그렇다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아졌다. 당신은 그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사장이 될 수 있다.

K사장은 최근 경영 사례 모임에 참가했다가 사내 아이디어를 기업공개 형태로 공모해 1년 만에 대성공을 거둔 라이트솔루션의 사례에서 '필'을 받았다. 최근 "회사가 느려진 것은 나 때문인 것 같다"는 고백도 했다. 그가 전 사원에게 보냈다는 이메일의 골자는 이랬다. "앞으로 신규 사업 관련 회의에 사장이 참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사장이 결단을 내리면 회사는 21세기형 조직으로 금세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