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남 대신증권 사장(57)은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계기로 허용된 증권사 지급결제 문제가 은행권의 높은 참가비용 요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은행권의 대승적 판단을 촉구했다.

노 사장은 13일 한경닷컴 증권사CEO 릴레이 인터뷰에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가다왔는데도 지급결제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 "금융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은행권이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증권회사가 투자자예탁금으로 자금이체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증권투자자들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증권계좌에 있는 돈으로 매수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은행권이 전국에 깔아 놓은 7만8000여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출금기(ATM·CD)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은행권은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의 운영과 유지를 위해 연간 1조5000여억원이 들어가는 만큼 증권사들도 이를 사용하려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급결제망 이용을 위한 참가비는 증권사 규모에 따라 적게는 170억원에서 많게는 300억원까지 책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이 결제망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금융투자회사의 지급결제 허용을 1년 미루는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자통법의 큰 틀이 흔들릴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 사장은 "증권사가 지급결제 업무를 할 경우 투자자들은 지금처럼 은행을 거치지 않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 수수료를 내지 않고 간편해진다"며 "증권사는 고객예탁금을 증권금융에 모두 맡겨 은행보다 더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증권사 지급결제 문제는 투자자 편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사안"이라고 역설했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여러 논란에 대해서도 "자통법은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국내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몇년에 걸쳐 치열한 토론 끝에 입법된 것"이라고 말했다.또 "현재는 자통법의 기본 취지가 아니라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충분한 토론으로 이견을 좁혀 시행 후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 사장은 자통법 원년을 맞아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나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내보였다. 대기업 그룹 계열이 아닌 증권사로서 혼자 힘으로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오늘날에 이르렀다며 대신증권의 저력을 강조했다.

그는 "대신증권의 강점은 통합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통한 위기관리 경영"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금융위기 속에서도 대부분 증권사가 비용 문제로 지점을 통폐합하거나 축소할 때 오히려 유망지역에 지점을 추가로 개설했다"고 말했다.

노 사장은 대신증권의 강점인 위기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자통법 시행 이후 '한국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10년전 외환위기 당시 5대 대형증권사 중에서 현재 경영권이 바뀌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증권사는 대신증권이 유일하다"며 "상시적인 위기관리와 지속가능한 경영으로 위기를 성장 계기로 삼아 나갈 것"이라며 포부를 다졌다.

그는 자통법 시행에 맞춰 선물업과 헤지펀드 등 새로운 수익원이 될 신규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대신증권이 '한국형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해 나가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새로 수립한 리테일 비전과 전략을 중심으로 '토털 고객자산서비스'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확실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브로커리지 부문은 더욱 강화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성장성이 높은 자산관리나 투자은행업무, 자기자본투자(PI)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IB부문도 이것저것 다하는게 아니라 대신증권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며 "영업지역도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증시 전망에 대해서는 상반기에는 글로벌 신용위기 여파로 변동성이 큰 장세가 불가피하지만 하반기는 실물경기와 기업수익이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금융시장 역시 반등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노 사장은 "실물경기와 금융시장의 상저하고(上低下高) 현상을 감안한다면 상반기와 하반기의 투자전략을 차별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상반기는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되기 전까지 업종대표주나 주요 그룹 관련주, 현긍성 자산이 많은 종목을 중심으로 매수하고, 하반기는 국내 증시 반등을 주도할 경기 민감주와 실적 전망치가 상향되는 종목들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과 직원들의 복지도 노 사장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 중 하나다. 그는 대신증권 여의도 본사사옥 지하층 입구에 버티고 있던 회사의 상징물 황소 동상이 최근 자취를 감춘 점에 대해 "지하 1층을 구내식당과 직원들의 여가활용 공간으로 확충하기 위한 공사를 하느라 잠시 옮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끝으로 "대신증권이 46년 전통의 리테일 금융서비스에서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력 있는 전문인력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투자은행으로 성공하려면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안목과 경험이 많은 인재가 필수적인 만큼 인재 육성에도 더욱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