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금융권으로부터 '퇴출기업'으로 선정되기도 전에 퇴출될 판이다. 오는 23일께 은행연합회의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 선별을 위한 신용위험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은행들이 발표 이후로 건설사에 대한 대출을 미루고 있어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 은행은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건설공사 브릿지론(공사대금채권을 담보로 내주는 대출) 550억원에 대한 보증을 받았는데도 대출을 신청한 건설사들에 단 1억원도 입금을 안 해주고 있다. 해당 은행은 "신용등급평가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다시 대출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이유를 내걸고 있다. 건설사 가운데 한 곳은 오는 20일까지 돈을 받지 않으면 부도 위기 가능성까지 있지만 은행 측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이 꽁꽁 묶이면서 해외 사업 수주도 타격을 입고 있다. 한 건설사는 최근 중동 지역에서 400억원 규모의 주택사업을 수주하면서 발주처로부터 선수금 80억원에 대한 한국 금융기관의 보증을 요구받았다. 건설사 재무담당 임원은 이에 거래은행을 찾아가 보증을 요청했다가 은행 측의 답변에 눈이 둥그레졌다. 은행 측에서 "보증액만큼의 돈을 예금으로 넣고 건설사 대표이사 개인이 보증 사고 발생시 책임질 것을 서약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 건설사는 은행 측의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고민하느라 발주처에 답변 시기를 늦춰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23일까지도 신용위험평가 결과 발표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해 건설사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발표가 늦어질수록 업계 전반의 '돈 가뭄'도 오래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자가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평가권을 쥔 은행에 인사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단체장이 지역 기업의 구명운동에 나서는 상황이다.

'금융권 역시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변호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신용위험평가 발표 이전에 건설업계에 대출을 해주기가 정 꺼려진다면 발표 시기라도 늦추지 말고 예정대로 해야 한다. 건설사들을 말려 죽인다면 금융권 역시 소중한 고객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장 무겁게 느껴진다고 해서 지팡이를 내던지는 우(遇)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임도원 건설부동산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