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LG 등 "투자 안 줄인다" 공격경영 선언


'공격경영으로 불황을 돌파하라.'주요 그룹 총수들이 내놓은 2009년 경영계획을 관통하는 공통 화두다. 글로벌 수요 침체로 전대미문의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해 사업계획도 최종 확정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지만 경영 모토만은 하나같이 공격경영에 초점을 맞췄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멈칫거리고 있을 때 투자와 고용을 늘려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올해는 판매 확대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공격경영을 선언했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당시 현대 · 기아차가 '10년 10만마일 품질보증' 등의 획기적 판매전략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를 크게 증가시켰던 점을 언급하며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판매 확대 방안을 추진하도록 주문한 것.현대차는 올해 국내 시장점유율 목표를 50%로,기아차는 35%로 잡고 판매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계열사 현대모비스도 올해 연구개발 투자를 2000억원으로 대폭 늘리고 2012년까지 하이브리드 부품 개발에만 1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10위권의 종합 부품회사로 거듭나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그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이건희 회장이 말했던 "대나무는 마디를 맺으면 더 강해지고 연은 바람이 거셀수록 더 높이 난다"는 말로 공격경영을 지시했다. 이 회장은 "시장이 어렵다고 해서 미래 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차세대 기술과 신수종 사업을 차질없이 발굴해 육성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경영계획을 최종 확정하지 않았지만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20조원대의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사 삼성엔지니어링이 올해 지난해보다 30% 정도 늘린 매출 4조2000억원의 경영 계획을 잡은 게 삼성그룹의 공격경영을 보여주는 사례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글로벌 경기 침체의 해법으로 '도전정신'을 제시했다. 구 회장은 "상황이 어렵다고 현안에만 몰두한다면 2~3년 후에는 더 이상 새로움이 없는 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를 계열사 체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겠다는 게 구 회장의 복안이다. 올해 투자 예산은 지난해와 비슷한 11조원 수준으로 잠정 확정했고 주력 산업인 전자와 화학부문은 글로벌 톱 클래스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최태원 SK회장은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 殺他 · 내가 살아 남아야 남을 물리칠 수 있다)'를 화두로 던지며 위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최 회장은 "지난 10년이 준비하고 훈련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실전의 시간이 시작됐다"며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환경에 대응하고 수립한 전략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실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이를 위해 자원개발 관련 투자비를 올해 1조원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1조원대의 자원개발 투자비는 지난해 490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를 통해 영국,브라질,리비아,페루 등 17개국 32개 광구에서 확보한 5억1000만배럴의 지분 원유 보유량을 2015년까지 8조5000억원을 투자해 10억배럴까지 늘리기로 했다.

포스코그룹도 '미래 성장기반 강화'를 위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6조원의 국내 투자 계획을 세웠다. 포스코 관계자는 "불황이라고 마냥 소극적으로 경영전략을 세웠다가는 2~3년 후 철강경기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들어가면 경쟁회사들에 뒤처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녹색성장에 초점을 맞춘 신사업 발굴 노력도 뜨겁다. 현대 · 기아차 그룹은 올 상반기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를 내놓으며 친환경차 양산의 꿈을 실현하는 것을 계기로 2010년까지 하이브리드카 양산 규모를 5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삼성 그룹의 삼성SDI는 올해부터 2차전지 사업을 강화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모할 예정이며 삼성전기는 LED(발광다이오드)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LG그룹도 태양광,2차전지,LED 등 녹색 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LG화학이 최근 GM의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자동차에 2차전지를 단독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며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위기는 고급 인재를 확보하거나 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속하게 대처한다면 이번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 불경기 극복을 위한 4대그룹의 전략

삼성 비효율과 중복,낭비 요소를 제거하고 위기 시그널 관리도 강화.공격경영으로 경쟁사와의 격차 확대.
현대 · 기아자동차 올해 경영 화두는 '위기에서의 생존'.글로벌 판매확대를 통해 수익성 확보.
LG '글로벌 마켓 리더'가 모토.지난해 수준의 투자 단행. LED,시스템에어컨,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등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
SK '생존'을 모토로 삼고 비상경영 선포. 본원적 경쟁력과 전략 실행력을 높이고 성장여력 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