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기업 광고 '100살의 쇼'에 나오는 모델의 실제 나이는 98세다. 건강한 노인의 유쾌한 광고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맞아,내가 100세까지 살게 되어도 저렇게 유쾌하고 신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즐거움까지 준다.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신나고 유쾌한 노후는커녕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마이너스 통장을 메우기 급급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쫓기며 살아야 하는가. 실질적인 계획과 설계 없이 막연한 두려움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버는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펀드로,과도한 보험료로,부동산에 묶인 부채로 허덕이는 현실은 바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 낳은 결과다. 이 공포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많다. 사회안전망은 부실한데 금융권에서는 '나이 들면 십수 억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공포감을 조장하고,이는 현실적인 인생설계를 외면하게 만든다. 일하며 사는 30년 동안 제대로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은데,은퇴 후 돈 걱정 하지 않고 사는 길이 과연 그것뿐인가?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앙코르》라는 책을 만났다. '오래 일하며 사는 희망의 인생설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재무설계'를 넘어 '인생설계'라는 개념을 전파하고자 하는 내게 확신과 더불어 현실적 대안을 낳을 큰 그림을 보여주었다.
저자인 마크 프리드먼은 자신이 하고 싶으면서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인생 제2막을 여는 것,즉 '오래 일하며 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희망적인 인생설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인생 제2막을 여는 사람들을 '앙코르 세대'라 명명한다.
젊은 시절 자신의 잠재력을 다 소진했다고 '착각'하고 어렵게 모아놓은 돈이 바닥나는 것에 조바심 내며 살아가는 노후설계보다는 지금부터 찬찬히 '앙코르' 무대를 준비해 끊임없이 필요한 돈을 벌며 사는 것이 더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이지 않은가? 재무설계 강의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이런 인생설계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 '실버'인 빛바랜 세대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현실에 밝은 '앙코르 세대'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즉 앙코르 세대의 움직임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트렌드가 될 것이다. '젊어서 벌고 나이 들면 자산으로만 살아가는' 은퇴 개념은 이미 힘을 잃었다. 베이비부머뿐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젊은 세대 모두는 이제 새로운 사회계약을 갈망하고 있으며 '오래 일하고 사는 의미 있는 노후'는 지금 대한민국 청장년 모두에게도 늦기 전에 돌아봐야 할 화두다.
이 책에는 실제로 앙코르 인생을 시작한 미국 베이비부머의 사례들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58년 개띠'들을 중심으로 한 중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은퇴를 거쳐 사회의 소수자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경험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생설계를 찾아 나섰다.
그 현실적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기 위해 빵을 판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사회적 기업' 운동은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부터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제도는 앙코르 세대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고용 창출과 영리 추구라는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사회적 목표를 시장논리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전 세계적으로 몰아치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경제복구만이 아니다. 공공정책 입안자들은 물론 앙코르 인생을 앞둔 세대들이 일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곧 취임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나 교육개혁 등으로 실현하려는 진정한 '뉴딜'도 미국 베이비부머들이 만드는 커다란 흐름 가운데 나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 인생설계에 고무되어 진정 '지속 가능한' 일과 인생을 추구했으면 한다. 강연에서 만나는 60~70대 사회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 또한 '일하며 오래 사는' 빛나는 노후를 꿈꾼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