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오리엔탈 데모크라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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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뉴욕타임스 북 리뷰'엔 김대중 전대통령의 옥중서간 영문판 출간을 기념하여 서평이 실린 적이 있다. 당시 서평은'Shame and Chauvinism'이란 인상적 제목하에 동양문화에 정통한 인류학자가 기고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내용인 즉 한국에서 민주주의라 함은 매우 추상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으로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정치 지도자의 덕(德',virtue)에 해당될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오랜 세월 한국의 민주화에 온 몸을 바친 지도자의 글 어디에서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대한 성찰이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구하긴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평자가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화를 위해 투쟁 중이었던 한국인의 심성 속엔 부끄러운 수치심(shame)과 배타적 국수주의(chauvinism)가 절묘하게 교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향해서는 뿌리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외부의 적 앞에서는 근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묘한 이중성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라는 것이다.
평소 폭력과 욕설이 난무해온 국회를 향해 어느 정도 무감각해 있던 우리들이 타임지 표지 사진에 흥분하는 이면엔,숨기고 싶은 치부를 만천하에 들켜버린 데 대한 수치심이 민주주의의 원리원칙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반성보다 앞섰기 때문은 아닐는지.
물론 아시아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타임지 기자의 시선이 구구절절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시아 각국에서 강변하는 바 "동양에서 유럽식 혹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꽃 피길 기대하지 말라.우리는 동양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양적 민주주의(Oriental Democracy)를 만들어갈 것"이란 주장 속엔 온정주의적 통제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오고 있고,국가주도하의 시장경제에 대한 유혹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서구의 조언인 즉,민주주의란 집단 간 갈등 및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협상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정치 지도자 개인의 리더십이나 덕성에 의존하기보다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합리적 작동에 힘쓰라는 것이다. 서구는 바로 그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시스템으로 작동시키는 데 200여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국가의 부정적 이미지가 막강한 경제적 손실로 직결됨을 간과하지 않는다면,더불어 정치적 민주화 역량과 시장의 경쟁력이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관계에 있음을 간파한다면,정치권의 반성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