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 간장~ 샘표간장~.'

가수 김상희씨가 1961년 불러 국내 첫 CM송으로 기록된 샘표식품(대표 박진선)의 간장광고 가사다. 라디오 TV 등에 선보인 지 50년이 다 돼 가지만 지금도 이 CM송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46년 설립된 이래 국내 대표적인 장류업체로 자리 매김한 샘표식품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650억원(추정치)의 매출을 올린 샘표식품은 국내 간장시장의 약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 회사가 보유한 상표인 '샘표(1954년 등록번호 362호)'는 현존하는 국내 최장수 브랜드.간장만 놓고 보면 일본의 기코망과 야마사에 이어 세계 3대 업체로 손꼽힌다.

샘표는 1946년 8월20일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고 박규회 창업주(1976년 작고)가 일본인이 버리고 간 서울 충무로의 '삼시장유 양조장'을 인수하며 싹을 틔웠다. '내 가족이 먹지 않는 음식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워 열심히 간장을 만들었지만 초기엔 마음고생이 심했다. 집에서 메주를 띄워 간장을 만들어 먹는 생활 습관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2대인 박승복 회장(87)은 "아버님과 직원들이 빨대로 간장을 뽑아 유리병에 넣어 팔았는데,몇 년이 지나서야 아주머니들이 리어커꾼을 기다리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회사가 성장의 토대를 갖춘 것은 1953년께.피난지인 진해에서 간장을 담글 겨를이 없는 피난민들을 상대로 양조 간장을 팔아 번 돈을 밑천삼아 폭격으로 부서진 충무로 공장을 재건할 수 있었다. 1954년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뜻의 샘표를 만들며 회사 이름도 '샘표장유 양조장'으로 바꿨다. 이후의 성장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가 일등 공신."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간장 담그는 집이 줄어든 게 폭발적인 성장에 불을 댕겨 줬다"는 게 박 회장의 회고다.

수요가 크게 늘자 국내 최초로 충무로 공장 건물에는 네온사인 광고까지 설치했다. 이에 힘입어 샘표 간장은 그야말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함흥공립상업학교를 나온 박 회장은 재무부 기획관리실장,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지냈다. 창업주가 갑작스럽게 타계한 1976년 회사를 맡아 프리미엄 양조 간장을 개발하는 등 국산 양조 간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 선보인 '샘표간장 501S'다. 맛의 핵심인 아미노산 함유량이 1.5 이상이라는 뜻으로 '501'을,특별한(special)의 의미로 영문 이니셜 'S'를 붙여 만든 이 간장은 당시 국내에 유행하던 일본 간장을 겨냥한 야심작.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간장 제조 기술을 전수해 준 일본 간장 기술자들이 '501S'의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방한했을 정도로 불티가 났다. 회사 관계자는 "20여년간 13만1628㎘가 팔려 나간 최대 히트작"이라며 "이는 롯데월드 수영장을 290회나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다가 1997년 사장에 취임한 3대 박진선 대표가 중점을 둔 것은 '샘표간장 501S'의 계보를 잇는 고급 간장의 개발.콩 100%로 전통 제조법에 따라 만드는 '맑은조선간장'을 비롯해 염도를 낮춘 '저염 간장',유기농 제품인 '유기농 간장',국산 콩으로만 이뤄진 '국산콩 간장',단백질 함유량(T.N)을 높인 '샘표간장 701' 등이 그의 대표작들이다.

간장 맛과 함께 3대를 잇는 전통은 검소한 생활 스타일.박 대표는 할아버지 집에 들를 때마다 식사할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도망치곤 했다. 밥상에 오른 게 간장이랑 밥,김치 딱 세 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아직도 달력을 잘라 메모지로 접어 쓸 정도다. 박 대표도 회사 주식을 제외하고는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다.

독특한 것은 창업 이래 63년 동안 회사에 '절대적 위기'가 없었다는 점.심지어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에도 매출이 15% 이상 늘어났다. 주부들이 외식을 줄이면서 가정용 간장 사용량이 늘어난 것.여타 기업들과 달리 올들어 지난해보다 50% 많은 30명의 신입사원을 뽑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회사는 이 같은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바탕으로 올해에도 다(多)브랜드 성장 전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간장을 비롯한 전통 장류 외에도 소금 식초 등의 조미식품과 국수,차,통조림 등 가공식품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종합 식품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양식 소스 브랜드 '폰타나(수프,드레싱,오일 등)'를 비롯 웰빙 스낵 브랜드 '질러',소금 브랜드 '소금요정',차 전문 브랜드 '순작(純作) '등 다양한 브랜드를 개발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 확대와 식품 첨가물,조미 재료 등의 신소재 개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같은 고기 맛 등 다양한 맛을 내 주는 천연 조미 소재 세이버리치(savorich)는 이미 지난해 필리핀과 15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박 대표는 "기능성 원료와 해외 수출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올해 30% 이상 성장을 통해 매출 목표인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