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밸리'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오바마 미국 차기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기후변화 대응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그린 뉴딜'정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가와 신생 기업들은 '정보기술(IT) 혁명'에 이은 또 한 차례의 '그린혁명'을 꿈꾸며 뛰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상당수의 그린기술이 아직 홀로 서기에는 미흡한 데다 태양광과 바이오연료 등 신재생에너지들은 비용 측면에서 화석연료와 비교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휘발유값이 상대적으로 싼 미국에선 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의 금융위기는 사업을 막 키우려던 단계에 있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신정부가 그린기술 개발 투자에 막대한 돈을 지원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성공의 핵심은 기업가정신이지만 반도체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실리콘밸리의 명성을 높여준 기술의 대부분이 초기엔 정부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정부 지원 요구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오바마 정부가 그린기술에 최대 1000억달러를 쓸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오바마 당선인이 지지를 표명한 '스마트 그리드'(에너지 효율성을 최적화한 새로운 전력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 새로운 전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 밖에도 저리 자금 지원과 장기 연구개발(R&D)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요청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스티브 밀루노비치 기술주 애널리스트는 "과거 경험상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정치 바람 등을 타고 기복이 워낙 심해 벤처기업들이 자금줄로 의존하는 데 조심스러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자신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과 에너지 안보를 내세우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린기술 보급을 위해선 유류세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신 그 세금으로 친환경제품을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창업자이자 현재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인 빌 조이와 구글의 초기 투자가였던 벤처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는 "휘발유값에 하한선을 둬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는 방안이 현실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