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대출 연체를 막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출 부실이 발생하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져 은행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원들은 상품권을 신용카드로 구입한 뒤 현금으로 바꿔서라도 대출을 갚으라고 강권하는 등 무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품권깡 해서라도 갚아라'

중소업체 대표인 A씨는 2006년 5월 H은행 의 한 지점에서 연 1.4%의 금리로 엔화대출을 받았다가 환율 상승으로 이자가 연 6.2%로 불어나자 지난달 이자를 갚지 못했다. 그러자 해당 지점 직원이 "국민관광상품권이라는 게 있는데 다른 지점에서 상품권을 법인카드로 구입해 대출금을 갚아라"고 강권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A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국민관광상품권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주관해 H은행이 독점 판매하는 상품권이다.

A씨는 "직원이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꿔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설명해줬다"면서 "이른바 '상품권깡'을 시중은행이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했다. 해당 직원은 이에 대해 "여러가지 대출 이자 갚는 방식 중 하나의 예로 든 것일 뿐 상품권을 사서 이자를 갚으라고 종용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이 은행 고위 관계자는 "국민관광상품권 판매액이 직원 개인 실적으로 잡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출 연장이나 금리 협상 조건으로 상품권 구입을 강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로 드러나면 해당 직원과 지점장을 징계하겠다"고 말했다.

대출 연장 조건으로 원금의 일부를 상환하라고 압력을 받은 사례는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3년 전 아파트를 담보로 4억원의 돈을 빌린 B씨는 "올해 만기가 돌아와 은행을 찾아갔더니 원금의 15%인 6000만원을 일시에 갚지 않으면 연장이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원금을 한꺼번에 갚을 능력은 되지 않기에 은행 측에 상환액을 깎아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경기 나빠지기 전 연체관리 강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5%였던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0월 1.79%,11월 1.8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계 대출 연체율 역시 9월 0.58%에서 11월 0.66%로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연체율 관리를 연말에 철저히 했지만 올해는 1월인데도 고강도 관리에 들어간 상태"라면서 "경기침체가 본격화돼 연체율이 지난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본점 여신관리부에 '집중관리반'을 설치하고 기업 대출 쪽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직원 수가 4~5명이지만 연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앞으로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본부 협상을 통한 금리할인폭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다음 주 리스크심의위원회에서 대출금리에 적용되는 금리할인폭을 축소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공무원,교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엘리트론'의 대출한도를 1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줄였다. 의사들을 위한 '닥터론'의 대출한도도 2억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낮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자산건정성 확보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다 보니 자산을 늘리기보다 연체율 관리 같은 측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태훈/유승호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