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유행을 만든다. 성격이나 행동 유형도 그렇다. 전같으면 비호감이었을 게 분명한 '버럭 캐릭터'가 뜬다고 한다. 연예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에서까지 듣기 민망한 막말과 독설을 내뱉거나 툭하면 호통 치고 버럭 소리지르는 캐릭터가 인기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는 독설개그의 김구라와 호통개그의 박명수.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버럭쟁이 의사 안중근(이범수),'베토벤 바이러스'의 독설가 강마에(김명민),'아내의 유혹'의 악녀 신애리(김서형)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과거라면 대중의 호응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을 캐릭터들이다.

부드러움과는 동떨어진,까칠하고 독한 캐릭터가 주목받는데 대한 분석은 많다. 예능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 중심인 데서 비롯됐다,TV프로그램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노골적이 돼간다는 증거다,허례허식이 판치는 세상에서 솔직하고 거침없는 스타일이 먹힌 것이다 등.

틀림없다. 무엇보다 순발력이 중시되는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평범한 말보다는 독설과 호통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보다 쉽게 잡아끌 테고,웬만한 자극엔 눈도 깜짝 안하는 사람들을 겨냥하자면 보다 강력한 어휘와 말투,가식적이지 않은 태도가 필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혹시 이런 요인도 있는 건 아닐까. 세상살이가 답답한 사람들,"옳고 그름에 상관 없다. 소리 내면 일단 불리해진다. 조용히 사는 게 좋다"라는 생각에 그저 뭐든 꾹꾹 눌러 참고 사는 이들이 개그맨이나 드라마 속 인물의 독설과 거침없는 말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수많은 이들이 직장에선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조차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못한 채 목 뒤로 꿀꺽 삼키고 숨 죽이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체면 가리지 않고,내숭 떨지 않고,다가올 사태 감안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캐릭터들이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는 결코 적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하나,버럭에 솔깃하는 건 거기에 진실과 애정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독설과 호통이 자신을 혼내고 야단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일으켜세우려는 시도라는데 감동한다는 얘기다. "자신과 박명수의 개그가 인기를 얻는 건 시대를 잘 만난 덕"이라는 김구라의 고백도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