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가 변하고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당연한 일이겠지만,그간 공직에 대한 인식과 생각에도 변화가 많았다. 무엇보다 공직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졌고 공직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도 예전만 못하다. 가끔 후배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필자 역시 민간금융기관장들과 모임에 참석할 때면 공기업 기관장들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태도에서 이 같은 변화를 느끼곤 한다. 물론 자격지심이겠지만,연봉과 능력이 비례하는 현실에서 자기들 연봉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봉급을 받고 일하는 공기업 기관장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이처럼 그간 공직에 대한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고금동서를 통해 아직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공직의 무서움'이다. 공직의 무서움에 관해서는 기원전 법가를 대표하는 탁월한 이론가로 중국 진시황의 총애를 받았던 한비자가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면서 관직에 나선 일을 후회했던 일이나,'공직에 나서는 것은 멸문지화(滅門之禍)로 들어서는 길'이라며 후손들의 벼슬길을 만류했다는 선인의 이야기까지,예부터 이를 경계하는 일화가 셀 수 없이 많다.
공직에 몸담았던 분들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필자 역시 공직생활을 하면 할수록,더 어려운 자리에 올라갈수록 공직의 무서움을 절감하곤 했다. 물론 이는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공직자가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도천지수(盜泉之水 ·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둑 도 자(字)가 들어있는 이름의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는 뜻)'의 자세로 공직을 수행하신 분들조차 시끄러운 일에 본의 아니게 연루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무서움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밝혀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까 생각하면 정말 두렵다.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효율성이 신장된 만큼 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보다 어려움과 두려움만 배가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간부문 못지않게 사명감과 능력을 두루 갖춘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에 진출해서 국민에 대한 차원 높은 봉사의 기회를 갖게 하는 일 또한 우리 국가의 미래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