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전술은 경영방침에 달려 있다. 하지만 삼성은 올해 그룹 차원의 경영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 관련 재판과 경제불안 등으로 어수선했던 데다 구조조정본부 해체 이후 그룹 차원의 '방침'을 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선 2007년과 2008년에 잇따라 채택했던 '창조적 혁신과 도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을 땐 이건희 전 회장이 주창했던 '창조경영'이 더욱 긴요한 슬로건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창조경영은 특별한 전략과 전술을 채택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굳이 전략을 따지자면 '창조적 아이디어'와 '지속적인 혁신'정도로 요약된다.

올해 삼성은 과거의 성공신화를 이어가는 '창조적 파괴'에서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사장단을 대거 물갈이하고 조직에 일대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출발점이다.

◆글로벌 M&A 나선다.

삼성은 새해 사업 계획을 짜면서 모든 계열사에 글로벌 M&A(인수 · 합병) 전략을 별도 수립하도록 했다. 1990년대 이후 이렇다 할 M&A 없이 내부 투자만으로 성장해온 삼성에는 큰 변화다. 금융위기로 유망한 기업들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성장을 위한 또 다른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메모리카드 업체인 미국의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계열사별로 어떤 업체를 살지,자금은 어떻게 조달할지 세부계획까지 마련하고 있다. 독과점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는 국내보다는 독자적인 시장과 기술을 갖고 있는 해외 기업들을 주로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 261조원(2006년 말 기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이 M&A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50조원 정도다. '한방'에 시장 판도를 바꾸는 '메가 딜(mega deal)'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

그룹 주요 계열사 간 사업 통합과 역할 조정도 잇따를 전망이다. 중복 사업을 조정하고 연구개발 역량 및 시장지배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자 부문은 지난해 계열사 간 빅딜을 통해 사업 구조조정을 이미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는 OLED(유기 발광다이오드) 등 소형 디스플레이 사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회사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설립했고,삼성테크윈은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사했다. 녹색성장과 관련해 차세대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LED(발광다이오드) 분야에서도 전자 계열사 간 합작 법인 설립이 검토되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김인 삼성SDS 사장이 통신회사인 삼성네트웍스 사장을 겸임키로 함에 따라 양사간 합병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김 사장은 IT 분야의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양사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주창해왔다.

삼성 본관을 비롯한 서울 태평로 사옥에 금융 계열사들이 입성하는 5~6월께 금융 계열사 간 역할을 대거 조정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차세대 태양광 소재인 폴리실리콘 사업을 놓고 계열사 간 선점 경쟁이 벌어지고 화학 분야도 역할 조정이 예상되는 분야다.

◆마케팅 · 영업 조직 뜬다

삼성그룹은 인사 후속 조치로 마케팅 영업 라인을 대폭 강화하는 조직개편에도 나설 예정이다. 생명은 간부급 직원 20~30%를 현장에 배치키로 했으며 전자도 경영지원 및 기술총괄 직원들을 각 사업 총괄로 대거 내려보내기로 했다. 각 계열사별로 영업 및 마케팅 조직을 통폐합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그룹 주력인 삼성전자가 핵심 인력들을 서울에서 각 사업부가 있는 수원(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기흥 · 화성(반도체),탕정(LCD)으로 내려보내면서 권력 중심이 서울에서 현장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특히 성장 사업이 집중된 수원이 삼성전자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스피드 있는 의사 결정을 위해 그룹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사장단협의회의 역할도 재조정된다. 김징완 중공업 사장과 이상대 물산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중화학과 독립 계열사를 맡고 기존 이수빈 회장과 이윤우 부회장이 금융과 전자계열사의 수장 역할을 맡는 회장단 중심 경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건희 전 회장의 일선 퇴진과 함께 지난해 7월 사장단으로 구성된 사장단협의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펼치고 있지만 의사결정 구조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단이 긴밀히 협력하면 신속한 경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훈/김현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