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사간동과 소격동 일대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의 거리다. 광화문을 지나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의 왼편엔 경복궁과 국립중앙민속박물관이 있고,오른편엔 현대화랑 · 금호미술관 · 학고재 · 선컨템퍼러리 · 국제화랑 등 유명 화랑과 미술관이 줄지어 있다. 인사동과 이곳,정독도서관이 있는 화동과 가회동 한옥마을을 연계한 문화벨트 안(案)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특성 덕이다. 그러나 이 벨트는 늘 중간에 끊어지곤 했다. 화동 쪽으로 꺾어지는 곳에 있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때문이었다.

웃거나 떠들면서 걷던 사람들도 그 근처에선 왠지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유는 알 길 없다. 곳곳에 서 있는 군인들의 제복이 주는 긴장감 탓인지,군사 정권 아래 살았던 이들의 가슴 깊이 내재된 까닭 모를 두려움 탓인지.아무튼 다들 그랬다.

미술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은 물론 그곳을 지나다녀 본 사람들 모두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미술인들의 간절한 소망과 현실적 필요가 공감대를 형성한 걸까. 지난해 가을 기무사가 과천으로 옮겨간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그곳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건물 리모델링 등을 거쳐 2012년 이전에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문을 열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무사 이전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 이전 내지 서울관 건립은 미술계의 숙원이었다. 한 나라 미술문화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금처럼 외진 곳에 있어선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된다는 이유다.

실제 경기도 과천 막계리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가기는 쉽지 않다. 경마장을 지나 서울대공원을 둘러가야 하는 만큼 주말에 가려면 교통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개천절을 상징,1003개의 모니터로 이뤄진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도 마음뿐인 수가 많다. 작정하고 나서는 관람도 어려운데 교육프로그램 참가는 더더욱 힘들다.

가까운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기면 누구나 편안하게 드나들 테고 화랑 문턱도 전보다 쉽게 넘을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해 증진은 국민 전체의 색채와 디자인 감각 및 독창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소격동 국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벨트 조성은'콘텐츠 강국'한국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