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보험인에서 증권맨으로 변신한 최고경영자(CEO)다.1979년 3월에 삼성생명에 입사한 뒤 지난해 6월 삼성증권 사장이 되기 전까지는 무려 30년 가까이 삼성생명에서만 근무했다.

그는 삼성생명에서도 증권과 관련이 많은 자산운용과 금융기획 부문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시절에는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 등에서 그를 주요 금융인으로 분류했다. 골드만 삭스 등의 고위 인사가 한국을 방문할 때 그를 꼭 만나고 갔을 정도다.

박 사장은 과거 삼성 금융 소그룹 전략기획실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삼성 금융계열사 형성의 실질적인 산파역할을 했다. 삼성증권의 대형화, 동양투자신탁 인수에 따른 삼성투신운용 출범, 삼성선물 인수 등 굵직한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 같은 경험에다 이른바 ‘전략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되는 박 사장 개인의 특성을 감안하면 올해 삼성증권 주요 사업 방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공격적인 운용보다 사내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수성은 현상 유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탄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하면서,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 사장은 “오는 2월 4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사실상 금융업간 장벽이 없어지고 무한경쟁 체제에 들어서며 자본시장에서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 온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공격적 행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삼성증권은 자통법을 계기로 사업 각 부문에서 차별화를 시도, 종래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증권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란 △선진적인 자산관리 모델 △투자은행(IB)과 상품운용(CM) 부문의 업그레이드 △해외진출 가속화 등이다. 증권사가 단순히 펀드를 팔고, 주식거래만 하는 곳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박 사장은 본사지원조직을 개편하고 프라이빗뱅커(PB) 교육을 강화하면서 홍콩·일본 등 금융 선진지역 진출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 9월 업계에서 가장 먼저 글로벌 IB수준의 ‘선진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전담 조직을 확대하는 등 철저히 대비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현재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이는 투자자보호 문제를 대비해 ‘상품 등급제’ 등을 실시중이다. 최근 고위험 상품의 판매절차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로스차일드와의 제휴, 홍콩법인 투자 확대 등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이 같은 해외 진출 전략과 관련해 박 사장은 “우선 아시아 핵심 시장에서 실력을 쌓고, 궁극적으로 아시아의 역내 주도적 증권사(Regional Player)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 아시아 지역의 주도적 증권사가 자연스럽게 글로벌 회사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 경영환경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박 사장은 “올해 가장 중요한 경영목표는 ‘고객 신뢰 회복’”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형 상품은 원래 변동성이 크므로, 상품의 판매보다는 지속적 사후 관리와 전문적인 자산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본사의 역량과 영업 일선의 열정이 뭉쳐 고객 한 분 한 분께 최적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점별 맞춤 세미나 등을 통해 PB와 고객이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최대한 많이 마련하는 등 시장이 어려울수록 이런 노력을 해야 차별화된 서비스로 인식되고, 곧 고객 신뢰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 같은 노력들이 하나 둘 쌓일 때 궁극적으로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는’, 즉 자산관리형의 새로운 증권 비즈니스 모델과 증권 문화가 창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박 사장은 올해 증시에 대해 “아직 구조조정의 과정이 남아 있어 주가의 변동 폭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러한 위험이 싫은 투자자들은 채권형 상품이 적합할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부동 자금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단기채가 유망하다”며 “은행채 및 우량 회사채 금리도 매우 높아 매력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달러로 환산한 한국주식의 가격은 매우 낮다”며 “원화가치 회복과 함께 그 동안 매도로 일관했던 외국인들이 순매수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기업들의 실적악화, 도산하는 기업 증가 등으로 인해 투자 심리가 더욱 악화될 수 있지만 이러한 위험을 감내 할 만큼 장기적인 투자자라면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분할 매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 사장은 돈은 많이 풀렸지만 시중에 자금이 돌지 않는 현 금융시장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먼저 회사채 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증기능 확대를 통한 회사채의 신용보강이 가장 관건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소비를 진작시켜 어느 정도 기업을 정상화 시키는 한편, 기업 구조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은행도 추가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하며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한 신속한 부실자산 매입을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로 자금이 묶이는 현상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도 금융의 기능 정상화를 기다리지 않고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고용 및 소비를 먼저 안정화시킨 것처럼 기업들의 흑자도산이 확대되기 전에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살 기업과 죽을 기업을 분명히 해 시장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금융의 기능이 회복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