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변호사 생활은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 부팅하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격무였다. 촌음을 다투는 생활이었지만,꽃나무를 들여 놓은 후에는 출근하자마자 꽃나무를 살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그리고 아주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꽃나무를 살폈다. 집이건 사무실이건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남향을 좋아하는 나는 남향으로 난 창문 앞에 꽃나무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주곤 했다.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마치 지난 일주일간 나의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꽃나무에는 예닐곱 군데 정도 새 이파리가 돋아 있곤 했다. 물을 흠뻑 주는 월요일 아침이면 몇 군데나 새순이 돋았나 세어보는 게 작은 행복이었다. 갓 피어난 투명한 이파리는 꽃보다 더 고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나는 몇 달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맘속으로 서운해 했다. '너는 내가 이렇게 예뻐하는 데도 어쩜 꽃 한번을 안 피우니….'
그 주말이 지나고,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나무를 살펴본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짓말처럼 꽃망울이 올망졸망 맺어져 있는 것이었다. 스무 송이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감격스럽기도 했지만,한편으론 꽃나무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니 그 무거운 맘은 형언할 수 없었다. 행여 내가 꽃나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곧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마치 첫 아이가 아팠을 때 아이의 생명줄이 내 두 손에 쥐어진 양 무서웠던 책임감과 같았다. 꽃나무가 마치 내 셋째 아이 정도 되는 듯했다.
작년에 의원회관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이 꽃나무를 또 데려왔다. 이 꽃나무는 그 어떤 것에서도 내가 쏟은 정성만큼만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자식도,직장생활도,친구들도,또 내 자신마저도 결국 모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일에 쫓기는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 엄청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나 좋은 인연을 맺은 이 꽃나무는 밤 늦도록 내 사무실을 함께 지키는 친구이자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