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무실에는 내가 가는 직장마다 함께 다니는 꽃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올해 8년째 키우는 중국산 자스민 나무다. 작은 하얀 꽃이 수국 송이처럼 무더기로 핀다. 한두 송이만 피어도 사무실 문을 들어서면 방 전체에 진한 라일락 같은 향기가 난다. 처음 들였을 때는 나보다 키가 작았는데,이제는 나보다 크다. 자태도 무척 곱다.

로펌 변호사 생활은 아침에 출근해 컴퓨터 부팅하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격무였다. 촌음을 다투는 생활이었지만,꽃나무를 들여 놓은 후에는 출근하자마자 꽃나무를 살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그리고 아주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꽃나무를 살폈다. 집이건 사무실이건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남향을 좋아하는 나는 남향으로 난 창문 앞에 꽃나무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햇빛을 골고루 받도록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주곤 했다.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마치 지난 일주일간 나의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듯,꽃나무에는 예닐곱 군데 정도 새 이파리가 돋아 있곤 했다. 물을 흠뻑 주는 월요일 아침이면 몇 군데나 새순이 돋았나 세어보는 게 작은 행복이었다. 갓 피어난 투명한 이파리는 꽃보다 더 고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나는 몇 달이 지나는 동안 한번도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맘속으로 서운해 했다. '너는 내가 이렇게 예뻐하는 데도 어쩜 꽃 한번을 안 피우니….'

그 주말이 지나고,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나무를 살펴본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짓말처럼 꽃망울이 올망졸망 맺어져 있는 것이었다. 스무 송이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감격스럽기도 했지만,한편으론 꽃나무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니 그 무거운 맘은 형언할 수 없었다. 행여 내가 꽃나무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곧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마치 첫 아이가 아팠을 때 아이의 생명줄이 내 두 손에 쥐어진 양 무서웠던 책임감과 같았다. 꽃나무가 마치 내 셋째 아이 정도 되는 듯했다.

작년에 의원회관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이 꽃나무를 또 데려왔다. 이 꽃나무는 그 어떤 것에서도 내가 쏟은 정성만큼만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자식도,직장생활도,친구들도,또 내 자신마저도 결국 모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일에 쫓기는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 엄청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만나 좋은 인연을 맺은 이 꽃나무는 밤 늦도록 내 사무실을 함께 지키는 친구이자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