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납품 물량이 반토막 났는데 파업까지 하면 부품사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현대자동차 납품업체 사장)"하루 여덟 시간 일감도 없어 작업조 한 곳은 놀아야 할 판에 무작정 임금을 더 받기 위해 근무 방식을 바꾸자면 회사는 어떻게 합니까. "(현대차 전주공장 임원)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측에 주간연속 2교대제 조기 시행을 압박하기 위해 파업 강행을 결의한데 대해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조차 "도요타도 감원,감산에 나선다는 뉴스가 매일 나오는 마당에 시급하지도 않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놓고 파업에 들어가겠다는 것을 누가 용납하겠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노조 조합원도 외면하는 파업

현대차 노조가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발생 결의안을 가결한 19일 울산공장 생산현장엔 노조 집행부의 독단적 행태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울산공장 사업부 대표들은 구내식당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쟁의발생 결의를 위한 임시대의원 대회를 소집했다"며 "노조 의결기구를 유린하는 처사이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만난 버스라인 조반장 김모씨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주간연속 2교대제도를 도입하는 건 무리"라며 "잔업 · 특근이 사라지면서 월급이 70만~80만원 정도 줄긴 했지만 회사가 문을 닫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조반장 이모씨는 "최근 쌍용차 사태를 지켜보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이 고조돼 있다"며 "노 · 사가 머리를 맞대고 위기극복에 나서기는커녕 주간연속 2교대제를 놓고 파업을 한다는 데 적극 동참할 조합원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A부품업체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경기침체로 납품량이 50% 이상 줄었는데 현대차가 파업까지 하게 되면 아예 공장 문을 닫게 될까봐 걱정"이라며 "다들 어려운데 파업을 벌이겠다는 건 현대차 노조의 이기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한길리서치 연구소가 현대차 근로자 900명을 대상으로 주간2교대제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33.2%(299명)가 '논의는 하되 시행시기를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고,17.2%(155명)는 '도입 논의와 시행시기를 경영 안정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임금보전 놓고 노 · 사 팽팽

지난 16일 오전 열린 노사협상에서 사측은 "경기 악화로 버스 트럭 등 주문량이 하루 8시간 생산분도 안될 정도로 물량감소가 심각하니 주간1교대(8시간 근무 후 다음 날 휴무)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지난해 단협에서 합의한 주간연속 2교대제는 생산물량 증감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2월1일 회사가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일방적으로 잔업과 특근을 중단한 데 이어 주간연속 2교대제까지 연기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측이 타협을 위해 "8+8시간 주간 2교대를 실시하되 임금은 시급으로 주겠다"고 설득했으나 노조는 "8+8시간 근무하되 잔업 · 특근 수당을 포함한 10+10시간 임금을 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영사정이야 어떻든 '덜 일하고 더 받는' 근무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금속노조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근로자의 월평균 잔업 · 특근 수당은 100만3914원이다. 노조 요구를 들어줄 경우 전주공장의 1389명 생산직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은 월평균 13억9443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주공장 관계자는 "버스공장은 확보 물량이 작년 6월(1만7000대)의 5분의 1도 안되는 3000여대에 불과하다"며 "현재 8+8시간 근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일감은 8시간분도 채 안돼 중간중간 라인을 비우는 방식으로 공장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전주공장의 한 임원은 "상용차는 주문생산이 대부분이라 '오더'없이 생산하긴 어려운데 쌀 없이 어떻게 밥을 짓느냐"며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면 인건비 등 비용부담과 재고누적 등 이중고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주력 수출 시장인 러시아 CIS(독립국가연합) 지역 판매량이 20%가량 줄었고 신규 오더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전주=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