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백제 무왕의 왕후는 신라 선화공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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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을 해체 보수하던 중 석탑 1층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 사리호(사진)와 사찰 · 석탑의 조성 내력을 알려주는 사리봉안기(奉安記) 등 국보급 유물이 다수 발견됐다. 이들 유물은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서동요'가 허구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 석탑 1층 심주(心柱) 윗면 중앙에서 사리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등 50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유물은 금판(金板)에 미륵사와 석탑 조성내력을 기록한 사리봉안기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무왕과 그의 왕비인 선화공주가 같이 창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리 639년 무왕의 왕후가 세웠으며 이 왕후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관직인 좌평의 딸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소는 "이번 발견은 부여 금동대향로 이래 백제지역 최고의 고고학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 석탑 1층 심주(心柱) 윗면 중앙에서 사리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등 500여점의 유물을 수습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유물은 금판(金板)에 미륵사와 석탑 조성내력을 기록한 사리봉안기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무왕과 그의 왕비인 선화공주가 같이 창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리 639년 무왕의 왕후가 세웠으며 이 왕후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최고관직인 좌평의 딸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소는 "이번 발견은 부여 금동대향로 이래 백제지역 최고의 고고학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