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마흔을 넘긴 김모씨는 이달 초 전격성 간염에 걸려 의식을 잃었다가 나흘 만에 다행히 간 기증자가 나타나 이식수술까지 받았으나 간이 생착하지 못해 하루를 채 못 버티고 사망하고 말았다.

유가족은 원인을 모를 뿐더러 지금 와선 간 이식이 과연 필요했는지조차도 의문스럽기만 하다. 전격성 간염(급성 간부전)은 이전에는 전혀 간질환의 증거가 없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심한 간염에 의한 황달,혈액응고장애,간성 뇌증(의식장애)이 발생해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치명적인 질환이다.

간 수치(GOT,GPT)는 정상치의 수백배를 넘는다. 만성 간염은 서서히 진행되고 인체가 이에 적응하면서 당장 사망할 위험이 거의 없지만 전격성 간염은 그럴 겨를도 없이 간세포가 급속하게 파괴되므로 치명적이다.

전격성 간염은 서구 선진국의 경우 간독성이 있는 진통해열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의 과량복용(상당수는 자살 목적,하루 4?c이상)이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흔하지만 국내서는 드물다.

이와 함께 결핵약 등 일부 양약과 독버섯이나 민간요법에 쓰이는 생약제도 간에 독성을 끼쳐 전격성 간염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국내서는 B형,A형 간염바이러스의 급성 감염이 여전히 가장 큰 문제다. 자가면역반응(자신의 신체 일부를 항원으로 인식해 항체가 과다 생성돼 공격)이나 원인 불명에 의한 경우도 상당수다.

드물게 임신성 지방간이나 윌슨병(간 뇌에 구리가 과잉 축적되는 희귀질환) 등도 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체계적인 통계는 없으나 증가 추세에 있다는 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1992년부터 12년간 60명,서울아산병원에서 1999년부터 6년간 114명에 불과하던 환자가 2004년부터 3년 6개월 동안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만 110명이 발생한 게 그 증거다.

위생이 불결했던 과거에는 어린 시절 A형 간염을 감기처럼 가볍게 앓아 항체를 획득했으나 지금은 위생상태가 현저하게 개선돼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급성 A형 간염에 걸리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 크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민간요법 생약제나 한약이 다량 소비되고 있는 것도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격성 간염 환자는 40~80%가 사망한다. 환자들의 생존율은 원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아세트아미노펜이나 A형 간염이 원인이면 간이식을 하지 않아도 50% 이상이 생존하나 B형 간염이나 간 독성 약제에 의한 경우에는 80%가 결국 사망한다.

전격성 간염은 조기 예측에 참고될 만한 증상이 미미하다. 즉 건강하던 환자에게 갑자기 간염이 발생하면서 어느 순간 황달이 오고 이후 2주 안에 간성 뇌증이 나타난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복용을 제외하고는 수일 내에 전격성 간염이 오는 것은 드물다. 대개 발병 후 1~2주 동안에 식욕부진 오심 구토 우상복부불쾌감 피곤함 소화불량 발열 몸살 등이 나타나고 이어 황달과 검붉은 혈뇨가 나타나므로 전격성 간염을 고려해 초응급 대처한다면 위험을 줄일 수는 있다.

치료의 핵심은 발병 후 2주 내에 나타나는 간성 뇌증에 의한 뇌부종을 조기에 발견,개선하고 신속히 간 이식을 시행하는 것이다. 뇌압은 평상시 10~15㎜Hg를 유지하지만 뇌부종이 심해 50㎜Hg 이상일 경우에는 이식 후에도 뇌기능이 원상 회복되지 않기 때문에 이식수술 대상이 될 수 없다.

뇌압을 낮추려면 락툴로스나 마니톨을 투여해 뇌내 부종을 줄인다. 이와 함께 항생제(감염방지) 신선동결혈장(혈액응고억제) 고열량수액(저혈당 방지)을 적절히 투여하고 신장투석처럼 간 지지요법을 시행해 간을 이식하기 좋도록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

간이식은 뇌 손상이나 대사이상이 나타나기 전에 신속하게 시행해야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다. 생존자의 간 일부를 떼어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이나 뇌사자의 간 전체를 떼어붙이는 전간이식이나 생착률은 비슷하나 생체간이식은 보다 신속하게 수술이 진행돼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체로 아세트아미노산을 과량 복용한 경우나 급성기 이후에 자연면역이 형성되는 A형 간염에 의한 전격성 간염이 비교적 예후가 좋다.

반면 B형 바이러스성 간염이 급속 진행한 경우에는 항바이러스제제를 투여해도 간염바이러스를 충분하게 억제할 시간이 없다.

이식을 시행했더라도 바이러스가 혈액 신장에 분포할 수 있고 이식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투여하는 면역억제제가 바이러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럴 경우 간염 재발이 우려되나 면역글로불린이나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재발률을 10%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김지훈 고려대 구로병원 간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