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2기 경제팀 사령탑을 맡게 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63)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이자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옛 재무부 금융정책 라인에 오랫동안 몸 담았고 이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내는 등 손꼽히는 '금융통'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동안 시장에서는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 · 실물위기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2기 경제팀을 이끌 적임자로 일찌감치 꼽혔다. 그와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는 재정부 한 관계자는 "금융과 재정에 누구보다 해박한 분"이라며 "물을 떠나 있던 물고기가 드디어 물을 만난 격"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경제관료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윤 내정자의 이력에는 굴곡이 많았다. 행정고시 10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옛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증권국장,세제실장,금융정책실장 등 요직을 거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금융정책실장을 맡고 있던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실무 라인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듬해 세무대학장으로 좌천됐다. 이어 1999년에는 한직인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밀려나 5년간 필리핀에서 근무해야만 했다. 한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무렵 그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금융감독위원장에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 내정자에 대한 관가와 시장의 평가는 한결같다. 바로 '시장주의자'라는 것이다. '시장주의자 윤증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엄격한 분리)에 대한 소신발언이다. 윤 내정자는 2004년 금감위원장 시절 "지나치게 엄격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로 인해 외국인 외에는 국내 은행 지분을 인수할 주체가 없다"며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했다.

반(反)재벌 기류가 강했던 참여정부 성격과는 맞지 않는 이 발언으로 그는 임기 내내 청와대 386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는 퇴임을 앞둔 2007년 7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며 다시 한번 소신발언을 하기도 했다.

기업에 대한 소신도 뚜렷하다. 금감위원장 시절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한 나라의 경쟁력은 곧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2005년에는 공정위원회가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비판하자 "어떤 지배구조가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인지는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윤 내정자는 이처럼 시장친화형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강력한 시장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감각도 갖췄다는 평도 듣는다. 실제 금감위원장 재직 시절 그는 잠재적 불안요소였던 5개 투신사와 카드업계 구조조정을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도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