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9월 이후 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심할 때는 은행들이 오버나이트(1일 만기) 달러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외화 유동성에 곤란을 겪었고,파생상품 관련 손실로 수천억원을 손해 본 은행도 있었으니 발 뻗고 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홍성주 전북은행장은 예외가 아닐까.

전북은행은 주요 은행의 실적이 반토막났던 지난해 3분기에도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순이익을 늘렸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결산 결과 영업이익이 539억원,순이익은 418억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32.8%와 65.2%에 달했다. 홍 행장은 20일 "원칙과 기본을 지킨 정도 경영이 금융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정도 경영이란 개인고객을 상대로 한 소매금융을 기본 축으로 삼아 수익성과 영업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금융업에서는 결코 대박이 있을 수 없다"며 "무분별한 외형 경쟁이나 고수익을 노린 파생상품 투자보다는 고객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고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은행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홍 행장의 경영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다른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판매했던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도 전혀 취급하지 않았다. 은행권이 해마다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던 2007년 12월에는 전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고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몇 달 새 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고객들의 항의로 곤욕을 치르고 키코와 관련해 수천억원의 손실을 내는 은행이 생겨나면서 홍 행장의 선택이 결국 옳았음이 입증됐다.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곧 국내에까지 밀려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은행 본연의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내실과 효율에 중점을 두고 부실 위험에 사전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이사회에서 결의한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국내 은행 중 최고 수준인 13.6%로 올라간다"며 "이를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서민 가계에 대한 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