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이 힘들여 번 돈을 뭐하러 학교에 적립합니까. 학교에 돈을 넣으면 넣을수록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걸요. "

최근 만난 서울의 한 교장선생님은 희한한 사립학교 재단적립금 구조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사립학교 재단들이 재단적립금을 쌓지 않는 것은 결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돈이 많은 '부자학교'는 오히려 지원을 하지 않고 '가난한 학교'에 더 많이 지원하기 때문에 재단 입장에선 차라리 가난한 학교 행세를 해서 지원금을 많이 타내는 게 낫다는 설명이었다.

왜곡된 지원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1999년 개정된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 운영규정'을 들었다. 이 규정 시행규칙 10조에 따르면 재단이 수익을 얻어 학교에 투자할 때의 우선 순위가 정해져 있다.

가장 먼저 써야 하는 것은 '제세공과금'.그 다음이 교사들의 인건비,연금 등이 포함된 '법정부담경비'다. 수익 활동을 통해 돈이 생겨도 재단은 일단 이 두 가지 항목에 우선 투자해야 한다. 교육시설이나 학교법인 운영에 자율적으로 투자하는건 그 다음이다. 결국 재단이 볼 땐 아무리 돈을 벌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게끔 돼 있다. 원하는 곳에 투자를 할 수 없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더 큰 문제는 법정부담경비의 경우 굳이 학교가 내지 않아도 해당 교육청이 지원해 준다는 점.서울시교육청은 재단이 부담하지 못한 법정부담경비를 특별한 제한없이 지원해 주고 있다. 작년만 해도 8360억원을 법정부담경비 지원이 포함된 '재정결함지원사업비'로 지출했다. 사립학교 재단들이 내야 할 교사 인건비 등을 국민의 혈세로 메운 셈이다.

최근 정부가 법정부담금 등을 지원해주지 않는 대신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자율형 자립고'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학들이 앞다퉈 자율형 사립고 신청을 하는 이유도 정부의 규제없이 원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재단의 손발을 묶어놓은 일반 사립고의 규제를 먼저 푸는 게 순서다. 그래야만 사립학교의 자율성도 신장되고 재단의 투자도 활성화된다. 이제 주변을 때리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룰 시점이 됐다.

성선화 사회부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