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는 '새로운 독립선언'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시간으로 오늘 새벽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의 취임 연설은 미국인들의 각성과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뉴프런티어 정신'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역대 미국의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아시아를 깊이 이해하고 미국이 직면한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갖춘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우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 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정치 지형에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1970년대 초반 미 · 중 관계 개선이 가져온 지역질서의 변화에 버금가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오바마 행정부의 군사안보 및 국제경제를 포함한 대외정책 결정 시스템이 어떤 인물들에 의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의주시하면서 우리 국익의 차원에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새로운 행정부의 등장은 모든 것이 '백지상태'에서 시작되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외교정책결정 시스템만큼 '제도적 기억'(institutional memory)이 강한 국가도 드물다. 대외정책결정자들이 행정부의 교체를 넘어서서 특정 사안과 국가 및 지역에 대해서 오랜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 전략적 발상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이 기억은 마치 바다 밑에 쌓인 거대한 침전물과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제도적 침전물을 딛고 관료,싱크탱크,학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두터운 전문가 그룹이 정권교체기에 교대로 대외정책을 담당하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바마 정권인수팀은 정책 입안이 아니라 적절한 인물 인선에 몰두했던 것이다. 국무장관 혹은 동북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일단 임명하면 그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 나가는 체제가 미국 시스템이다. 이들은 미국 의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 방향을 밝히고 그 과정에서 의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구체적 정책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미국 새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은 정권 출범 6개월 이후가 된다. 이 과정이 한 · 미간 정책 조율이 이뤄져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과 일본 전문가들이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요직에 인선됐다는 점이다.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 미 · 일관계를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를 가속화시켜 새로운 21세기형 동북아질서를 창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확인된다. 미국이 한 · 중간 전략적 대화의 진전을 요구할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 새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도 한 · 미공조체제 강화를 위해 과감한 논리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력 면에서 세계 10위권의 한국이 동북아 지역과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 · 미동맹이 중국,일본,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미국이 한국을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과 함께 국제사회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등한 한 · 미관계'는 단순히 구호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미국 새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한 · 미관계를 '21세기형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