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사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가속도가 붙었다. 취임 1주일 만에 자회사 KTF와의 합병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등 과감한 추진력과 속도경영으로 '통신 공룡' KT를 바꿔가고 있다. 현장 영업 중심으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을 단행한 데 이어 임원들도 대거 물갈이했다. 그러나 경쟁사 등이 합병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특유의 추진력으로 돌파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사장은 20일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유 · 무선 통신 컨버전스 시장을 선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KTF와 합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KT는 방송통신위원회 합병인가 등을 거쳐 5월18일 합병을 마칠 계획이다. 합병이 이뤄지면 KT는 연간 매출액 19조원,총자산 23조6000억원,직원수 3만8000여명의 거대 통신기업으로 바뀌게 된다. KT와 KTF의 합병비율은 1 대 0.72,매수 청구가는 KT가 주당 3만8535원,KTF가 2만9284원이다.

이번 합병은 성장 동력을 상실한 KT의 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이 사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합병을 통해 유 · 무선 통신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물론 관료화된 KT의 조직 문화를 일거에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천명해왔다. KT는 매출 40%를 차지하는 시내전화가 휴대폰과 인터넷전화에 밀려 수익이 빠르게 악화된 가운데 인터넷TV(IPTV) 등 신수종사업의 부진으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다.

이 사장은 "합병이 KT그룹의 성장 기반 강화는 물론 국내 정보기술(IT)산업의 컨버전스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낼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덴마크 중국 등에서 유 · 무선 사업자가 합치는 글로벌 통신시장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회사 조직도 일거에 바꿔놓았다. 현장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본사 지원부서 인력의 절반인 3000여명을 영업 현장에 배치키로 했다. 최근 임원 인사를 통해 본사 지원부서 임원 수를 12명으로 5명 줄이는 대신 영업부서 임원은 11명에서 22명으로 두 배 늘렸다.

이 사장은 조직뿐 아니라 서비스 혁신도 예고했다. 그는 "시내전화 사업을 위축시키더라도 인터넷전화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전화에 밀려 90%인 KT의 시내전화 점유율이 3년 뒤 74%로 추락할 것이라는 내부 분석에 따른 것이다. KT는 내달 지역정보 검색 등의 기능을 갖춘 인터넷전화기를 내세워 인터넷전화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장이 승부수를 띄운 KTF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KT가 국내 유 · 무선 통신업체로는 유일하게 통신서비스 인프라 구축 때 꼭 필요한 전신주와 통신 케이블 관로,광케이블 등을 독점하고 있어 폐해가 많다"며 "합병으로 인해 경쟁이 더욱 왜곡되고 소비자 선택권도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적으로 유 · 무선 통신사의 합병이 대세라는 KT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영국 정부는 2005년 경쟁 활성화를 위해 브리티시텔레콤의 시내망을 분리했고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등에서도 공정 경쟁을 위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