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재산적 처분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오모(43)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오씨는 2003년 12월 김모씨 명의를 빌려 사업자등록을 한 뒤 2004년 10월말까지 실내장식 업체를 운영했는데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6천여만원을 내지 않아 김씨 앞으로 세금이 밀린 상태이다.

검찰은 오씨가 세금을 낼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김씨에게 "네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해주면 며칠 뒤 명의를 변경해 주겠다"고 속였다며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오씨는 또 김씨와 다투면서 휴대전화로 `지옥에서나 보자'는 등의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수 차례 보낸 혐의(협박 등)도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처음부터 김씨에게 체납된 세금을 부담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협박문자를 보낸 혐의만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회사를 차리고 단기간 상당한 영업실적을 올렸음에도 세금을 내지 않은 점 등에 비춰 김씨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할 당시 세금을 김씨에게 부담시킬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사기 혐의도 유죄 인정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기죄는 타인을 속여 재산적 처분행위를 유발해 재물,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한다"며 "김씨 앞으로 세금이 부과됐다고 해도 이를 내는 등 재산적 처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서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원심을 깼다.

재판부는 또 "타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영업하면 실질과세 원칙상 실제 사업자에게 세금을 물려야 하기 때문에 김씨에게 세금을 부과한 것은 위법하고 오씨에게 납세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