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은행과 공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회 초년생이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아간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특히 지금처럼 경제위기를 맞아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이 고임금을 유지하는 것은 해당 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다 고임금을 겨냥한 취업재수생을 양산하는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기관의 취업 문턱을 넘어선 정규직들은 기득권에 집착,노동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전반적인 경제 효율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대졸 초임의 적정성을 따져보기로 한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독과점 기업이 대졸 초임도 높아


본지 출입기자들이 정부가 조사 중인 대형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 등을 통칭,대졸 군미필 기준) 및 금융기관(대졸 군필 남성 기준)의 초임 연봉(세전)을 알아봤더니 금융권이 4000만~50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공기업도 대부분 3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32개 조사 대상 공공기관 중에서는 금융 분야(9개)의 연봉 수준이 대체로 일반 공기업보다 높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38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기술보증기금(3800만원) 증권예탁결제원(3700만원) 등도 만만찮은 초임 연봉을 자랑했다. 신용보증기금은 3400만원으로 조사 대상 금융공기업 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일반 공기업 가운데서는 대체로 독과점 기업의 초임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4300만원으로 최고 수준이었고 인천항만공사(4100만원) 한국감정원(3700만원) 한국방송광고공사(3600만원) 등 정부가 법령에 의해 독점권을 부여한 기업들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쟁에 노출된 민간 기업이라면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주다가는 곧 도태되고 말 것"이라며 "금융권과 공기업은 법에 따른 진입 장벽과 정부가 보장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거기서 나오는 '지대(rent)'를 구성원들이 나눠가지는 구조를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공기관부터 초임 낮춰 일자리 나눈다

정부는 현재 305개 공공기관의 대졸 초임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다음주까지 1단계에 속하는 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2단계로는 본격적인 직무 분석에 들어갈 방침이다. 대졸 초임 적정성을 따져본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각 공기업으로부터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 실천 방안을 취합하기로 했다.

3단계로 자발적으로 대졸 초임을 낮춰 사람을 더 뽑겠다는 공기업은 정원을 조정해 신규 채용을 허용할 방침이다. 인건비 총액을 지킨다는 전제 아래서 올해 사람 수를 늘려도 좋다는 의미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직무의 성격이나 성과에 따라 보수를 차등화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적극 검토키로 했다.

◆금융권은 인턴 채용 확대키로

은행들은 당장 초임을 깎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신 지난해 임금 동결로 인건비 여유가 생긴 부분을 가지고 청년 인턴을 더 뽑고 비정규직 채용을 늘려 '잡 셰어링'을 실천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 동결 합의에 따라 은행별로 5~10%의 인건비 감축 효과가 생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융권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 약 6600명의 인턴을 채용했거나 채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와 금융권의 움직임에 대해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단순히 어느 기업의 연봉이 높으니 깎아야 한다는 식으로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접근보다는 우수 인력 확보가 필요한 공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따져 이에 상응하는 급여체계를 갖추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차기현/유승호/류시훈/강황식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