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은 독특한 작품이다.

가상의 극우 작가 30명의 이름,생존 기간,가족사,사생활,작품평 등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수다를 떨어댄다.

얼핏 보면 작가 30명의 약전 혹은 인명사전처럼 보인다. 책 뒤에는 기타 등장인물에 대한 주석과 참고문헌까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 30명의 면모는 다양하다.

젊은 나이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그럭저럭 평범한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는 반면,양로원 관리인들이 미발표 원고를 쓰레기통이나 불길에 던져버리는 수모를 사후에 겪은 사람도 있다.

부자나 빈자는 물론이고 사생활이 화려한 사람도 있고 이성과는 영 인연이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

모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노골적이든 소극적이든 나치즘에 경도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라는 인물은 히틀러를 직접 만나 함께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고 설정돼 있다.

에르네스토 페레스 마손은 작품 각장의 글자들을 모으면 '아돌프 히틀러 만세'라는 문장이 구성되도록 했고,미모의 여성 작가 다니엘라 데 몬테크리스토는 SS부대 대장이었던 볼프의 정부였다는 소문이 있다.

볼라뇨는 시종일관 글쓰기 재능을 극우 찬양에 허비하면서 이렇다할 작품 하나 남기지 못한 이들을 희화화한다.

29명째까지 침묵을 지키던 작가는 마지막으로 다룬 인물인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 편에서 불쑥 등장한다. 작가의 소설 속 분신으로 유치장에 투옥된 경험이 있는 '나'는 같은 칠레인인 호프만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가 악명과 달리 대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확인한 '나'는 "그 사람은 이제 어느 누구도 해칠 수 없어요"라고 내뱉으며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거스르려 드는 시대착오적인 극우 작가들을 한번에 '별것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역자인 김현균 서울대 교수는 "나치즘을 내세워서 극우적인 문학을 조롱하며,독특한 형식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