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우유부단하고 마비된 외교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 67대 미국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힐러리 클린턴의 취임 일성이다. 세계 외교 무대에 '마담 클린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22일 외교수장으로서 첫날 집무에 들어갔다. 전날 상원 인준에서 94대 2라는 압도적인 찬성을 받은 뒤 첫 출근이었다. 민주당 경선 패배 후 7개월여 만의 화려한 외출인 셈이다. 1000명이 넘는 외교관과 직원들은 식이 열린 워싱턴DC 국무부 청사 1층 로비는 물론 2층까지 가득 메운 채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첫 국무장관의 입성을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환영했다. 외신들은 "유명 록 스타의 공연처럼 열광적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가 단상에서 연설하는 내내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국무부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두 손을 모으고 서서 경청하는 모습은 신임 국무장관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오바마 정부)의 성공에는 국무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며 "(힐러리 장관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낸다"고 힘을 실어줬다.

힐러리 장관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아랍과 이스라엘 간 갈등,기후변화 협약 등 외교 현안들이 쉽지 않은 도전 과제임을 털어놨다. 그러나 "나는 오늘 위협과 위험뿐 아니라 잠재력과 가능성을 생각한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취임식 전날 발빠르게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 주요 해외 인사들에게 전화를 거는 등 '준비된 국무장관'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힐러리 장관은 자신의 개성은 잠시 접어두고 오바마 대통령의 실용노선에 적극 동조해 '소프트파워'를 앞세워 국제 무대를 누빌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임무와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경우 또 한 번의 대권 도전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새로운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는 동시에 방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등 '강온 양면'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현안 중 하나인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재협상 가능성을 내비쳐 논란을 예고했다.

힐러리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사이에서 '균형 잡기'에 고심할 것이라는 게 미국 정가의 관측이다. 그는 최근 국무부 브리핑 도중 회의실에서 갑자기 나가 통화를 하고 돌아온 뒤 "내가 항상 전화를 받아야 하는 남자가 두 명이 됐다"고 농담을 던졌다. 뉴스위크는 "힐러리가 통화하는 두 남자 중 누가 더 우선이냐에 대한 판단이 힐러리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