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만날 생각만 해도 기분이 들뜨게 마련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각종 노환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대하고 나면 마음은 미어진다. 부모는 자식이 걱정할까봐 여간해선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병을 숨기기 일쑤다. 예전과 달라진 부모의 안색과 거동을 유심히 살펴 감춰진 병을 조기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효도 귀성길로 활용해보자는 얘기다.

안색으로 가늠할 수 있는 내과질환

얼굴이 창백하면 빈혈을 의심해봐야 한다. 가장 흔한 이유는 철분 부족.위장이나 자궁 등에서 출혈이 일어나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수술로 위장을 절제했거나 채식 위주의 식사로 육식을 전혀 하지 않으면 비타민 B12(코발라민) 부족으로 빈혈이 생길 수 있다.

얼굴뿐 아니라 눈의 흰자위도 누렇게 보인다면 간염 담석증 췌장종양 등에 의해 담도가 막힌 황달일 수 있다. 식사를 제때 못하고 잠을 푹 자도 늘 나른하다고 호소하며 간혹 구역질이나 구토를 한다면 간 · 담낭 또는 위의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 눈은 괜찮은데 얼굴 피부만 노랗다면 빈혈이거나 귤처럼 카로틴이 많은 음식을 과량 섭취했을 가능성이 있다.

얼굴이 검다면 신장이나 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얼굴이 항시 벌겋게 달아오르면 폐경기 성호르몬 감소(여성),과음,심장판막질환,스트레스 등과 관련 있지만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얼굴이 부석부석한 원인으로 신부전이나 심부전,갑상선기능저하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얼굴과 팔이 모두 부었다면 심장으로 들어가는 상대정맥이 종양 등에 의해 막힌 경우일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체중이 예전보다 10㎏ 이상 줄었다면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거동 불편으로 파악하는 정형외과질환

한복 겉저고리를 입을 때 팔을 소매에 잘 끼워 넣지 못하고 밤에 통증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면 오십견을 의심해봐야 한다. 심하면 빗질이나 머리감기도 어려워진다.

발까지 손이 안 닿아 양말 신기를 힘들어하거나 허리를 숙인 채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 것이 힘들다면 허리디스크인지 알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허리디스크는 요통보다 다리 통증이 더 심하며 다리의 증상이 전혀 없이 요통만 있는 경우 허리디스크보다는 다른 원인에 의해 초래됐을 가능성이 많다. 앉고 일어서기와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고 발바닥을 끌면서 다닌다면 대체로 퇴행성 무릎 관절염에 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잘 떨어뜨리면 '손목터널증후군'일 수 있다. 손가락의 감각을 주관하는 팔목의 정중(正中)신경이 컴퓨터 작업,빨래,청소,설거지 등의 과도한 손목 사용으로 압박받아 손저림 증상이 나타난다. 방치하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치약 뚜껑 열기,단추 채우기,방문 여닫기조차 힘겨워진다.

부모가 자꾸 허리를 구부린다면 '척추관협착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노화로 인해 척추관 내벽이 좁아져 다리로 내려가는 척추신경이 압박받아 통증과 마비가 오는 질환이다. 허리를 구부리면 통증이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척추신경을 둘러싼 근육과 인대가 수축하고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증상이 악화되면서 외출도 힘들어진다.

인지기능과 발음으로 알아채는 질환

보통 뇌졸중이 갑자기 온다고 믿지만 뇌혈관이 서서히 막히는 뇌경색의 경우 환자의 20~40%가 전조증상을 느낀다. 증상이 워낙 가볍거나 일시적이어서 환자 대부분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뿐이다. 흔히 '미니 뇌졸중'이라고 하는 일과성 허혈발작은 보통 30분 이내에 모든 증상이 사라지며 더러 수시간에서 하루 정도 지속된다. 신체 한쪽에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둔해지고,시야장애가 생겨 한쪽 눈이 안 보이며,갑자기 어지럽고 걸음이 휘청거리고,발음장애나 심한 두통이 온 경험이 있다면 뇌졸중인지 병원에서 점검해봐야 한다. 통계적으로 전조증상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이 10배 높다. 뇌졸중은 건강상태가 나쁘면 50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철에 더욱 빈발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치매는 과거의 일보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나 손자 이름 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차를 타고 내릴 때 동작이 굼뜨거나,종종걸음을 치거나,얼굴의 표정이 잘 굳어지거나,계산 · 판단력 · 발음이 명확하지 않거나,외출했다가 집을 찾지 못하면 치매 초기 단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김광원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원장원 경희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고도일 신경외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