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서양화의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전(예술의 전당)을 찾은 관람객 1만여명 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자녀와 함께 찾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부나 친구끼리 와서 작품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시를 기획한 기&홍 컴퍼니 측은 "지난 40여일간 전체 관람객 12만명 중 중년층 비중이 20%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미술 전시회에 중년 관람객이 보통 10% 이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40~50대 '우아한 중년'이 새로운 문화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미술 전시회뿐 아니라 영화 공연 등에서도 '4050 컬처족'의 파워가 급속하게 커지는 추세다. 그동안 재테크와 건강에 집중됐던 중년층의 관심이 '정신적 즐거움'을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퐁피두센터 특별전'에도 중년층이 평일 500여명,주말 1000여명씩 찾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의 '루벤스,바로크 걸작전',경기도 분당 성남아트센터의 '후안 미로-최후의 열정전',고양 아람미술관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전' 등에도 중년층 관람객 비중이 2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루벤스,바로크 걸작전'에서는 매주 월요일 성인 관람객에게 입장료 3000원을 깎아 주는 할인 행사를 마련 중이다.

영화관에도 중년 관객이 늘고 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쌍화점'은 중년여성 관객이,'과속스캔들'은 자녀를 대동한 중년부부 관객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과거에 젊은 층보다 한 걸음 늦게,특정 장르의 영화만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국내 최대 극장체인 CGV에서는 40대 이상 멤버십 회원 비중이 2005년 전체의 13.3%에서 지난해 19.8%로 증가했다. 이들의 구매 금액 비중도 2005년 8%대에서 지난해 17%대로 9%포인트나 상승했다. 이에 따라 CGV는 평일 낮시간대에 40대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브런치를 즐기며 영화를 관람한 후 문화계 인사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브런치 클래스'를 마련,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쌍화점'을 배급한 쇼박스 박진위 팀장은 "중년층 증가는 관객층의 다변화로 이어진다"며 "침체된 한국영화 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시장도 마찬가지다.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INT가 2008년 공연티켓 판매량(기업 및 단체 판매 제외)을 집계한 결과 20대 비중이 전년도에 비해 2%포인트 낮아진 반면 40대와 50대 비중은 각각 1%포인트씩 상승한 12~13%로 나타났다. 특히 '웃음의 대학''돌아온 엄사장''늘근도둑 이야기''잘자요,엄마' 등 연극에서는 40~50대가 전체 관객의 40%를 넘었다.

연예계에서도 중년 스타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출연한 장미희의 인기가 치솟은 데 이어 채시라도 최근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의 주역으로 복귀했다.

KBS의 한 관계자는 "과거 40~50대는 먹고 살기 바빠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적극적"이라며 "이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40~50대 연예인들에게 애착을 보인다"고 말했다.

유재혁/박신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