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ㆍ손열음 추위 녹이는 건반 대결
차세대 피아니스트 김선욱(21)과 손열음(23)이 맞대결을 펼친다. 손씨는 오는 30일 부천시민회관에서 부천필하모닉과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고,김씨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무대에 올린다. 두 연주자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제자이자 해외에 유학하지 않고 국내 교육으로 탄생한 스타 피아니스트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은 2000년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초등부,중등부 우승자로 처음 만났고 똑같이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둘은 해가 갈수록 또래 연주자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클래식 마니아들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발전을 비교해가며 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손씨가 앞서갔다. 전설적인 여성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를 연상시키는 파워와 열정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뉴욕 필(2004),도쿄 필(2005),NHK 심포니(2005)와 협연을 이어갔다. 세계적인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카리스마있는 연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06년 판세가 바뀌었다. 세계 3대 콩쿠르에 속하는 리즈 콩쿠르에서 손씨가 2차 예선에서 탈락한 반면 김씨는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시 18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원숙함과 무게감을 보여줬다.

리즈 콩쿠르는 영국 관현악계와 매니지먼트의 전폭적인 후원을 얻기 때문에 뉴욕,일본과 함께 세계 클래식 3대 시장인 영국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씨는 지난해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 매니지먼트사 '아스코나스홀트' 전속 연주자로 영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스타 피아니스트의 맞대결이라는 것 외에 두 연주회의 프로그램도 흥미진진하다. 김씨가 연주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베토벤의 창작 원숙기인 1807년 작곡된 작품으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녔다. 작품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빠져들면 안된다는 철칙을 지켜야 한다. 악보에 충실하기로 소문난 마렉 야노프스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지휘자와 신인답지 않은 해석력을 갖춘 김씨의 콤비가 기대된다. 영국에서 대타 연주도 마다하지 않고 프로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선 김씨의 실력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손씨가 연주할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화려하면서도 난이도 높은 테크닉으로 아티스트가 쉽게 도전하기 힘든 곡이다. 손씨의 강렬함이 곡의 섬세함을 담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손씨가 오는 5월 미국 텍사스에서 개최되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결선곡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우승만으로 미국 50개주 공연이 잡힐 만큼 풍부한 협연과 녹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대회.이번 무대는 그동안 갈고 닦은 손씨의 기량을 제대로 보기에 적격이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31일 예술의전당에서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하며,2월1일 경기 고양아람누리에선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브람스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부천필은 31일 무대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곡 '돈 주앙'과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4번'도 선사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