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린 데이비슨이 창안한 '나이키' 로고 역시 헐값에 넘겨졌다. 대학원생이던 데이비슨은 71년 나이키 설립자인 필 나이트로부터 멀리서도 잘보이고 속도 · 도약 · 움직임을 드러내는 스포츠화 로고 디자인을 부탁받은 뒤 지금의 로고를 만들어주고 35달러를 받았다.
이처럼 자신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했으나 정작 자신은 별 이익을 얻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 부자 혹은 유명인물로 만든 사람을 페히포겔(Pechvogel)이라고 부른다. 불운(pech)과 새(vogel)의 합성어로 불운한 혹은 불행한 사람을 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허 출원을 할 줄 몰랐거나 잊고,아이디어를 도난당했거나,남을 믿은 탓이다. 페히포겔들은 그러나 그런 일을 겪고도 운명을 탓하거나 불만에 가득차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 위의 두 사람 역시 당시로선 당연한 대가였다며 욕심 없이 자신의 일에 정진했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디자인문화재단(KDF)이 1960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인의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 '코리아 디자인' 52가지로 이태리타월,솥뚜껑 불판,김치냉장고 딤채,모나미 153볼펜 등과 함께'철가방'을 선정했다.
발명자 내지 고안자가 있는 다른 것들과 달리 철가방은 개발자가 없다. 아무도 디자인료를 지불하지 않고 사용한다는 얘기다. 그래서인가. 철가방은 문화인류학적 소산으로 먼 훗날 박물관 맨 앞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선정 이유까지 나왔다.
철가방은 자장면과 동의어이자 눈물과 땀의 상징이다. 가수 태진아씨도 한때 들고 뛰었다고 한다. 세로문을 창안해낸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 가볍고,국물 안흘리고,따뜻한 채로 배달할까 궁리한 결과였을 게 틀림없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남이 뭐라든 자신의 일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뭔가를 뜯었다 붙였다,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할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