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공정위의 기업결합(M&A) 심사 관행을 특별히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반도체처럼 직접 소비재가 아닌 경우 기업결합 심사는 세계 시장과의 경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점을 막는 것이 공정위의 최우선 임무지만 기술 발전과 시장 상황 변화를 고려해 가면서 일을 처리하라는 주문이었다. 28일 공정위가 한국신용정보(한신정)와 한국신용평가정보(한신평정)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M&A로 탄생하는 결합회사가 본인신용정보조회 서비스 시장의 88.6%를,실명확인 서비스 시장의 70.76%를 장악하게 된다지만 글로벌 신용정보회사 익스페리언(4조1300억원) 한 곳에서 올리는 매출의 20분의 1에 불과한 국내 시장을 감안할 때 획일적인 '독과점 프레임'에만 매몰돼 기업결합을 막아서는 게 얼마나 실익이 있겠느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신용정보업 시장 영세성 탈피 기대"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 허용의 기대 효과로 국내 신용정보회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들었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서 국내 신용정보업 시장 총 매출액 9560억원 중 채권추심업을 제외한 순수한 신용정보업 시장 규모는 2100억원인데,이는 글로벌 신용정보회사인 익스페리언의 20분의 1이고,무디스(2조2590억원)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턱없이 좁은 내수 시장에서 아웅다웅 하고 있는 업체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논리는 그동안 시장점유율 확대에도 불구하고 기업결합을 승인해달라는 M&A 당사자들이 주로 펴오던 것이다. 그동안 공정위는 글로벌 시장의 판도보다는 국내 시장의 경쟁제한성에 무게를 두고 심사를 해왔다. 생산설비 과잉 상황에 직면한 석유화학업계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도우려는 옛 산업자원부와 M&A 심사 기준을 두고 잦은 마찰을 빚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앞으로 공정위가 M&A 심사를 하게 될 경우 국내 시장의 경쟁 환경과 더불어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부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자율적 구조조정 활성화 기대

공정위의 태도 변화가 구체적인 결정 사례로 나타남에 따라 앞으로 산업별 구조조정 차원에서 기업 간의 자율적 M&A가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재계는 그동안 현행 기업결합 심사 관행이 국내 기업 간 M&A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며 개선을 건의해왔다. 전체 내수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국내 시장 특성상 어느 업종이든 주요 기업 간 M&A는 독과점과 유사한 시장 상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지난 8월 한 강연에서 "이제 한 국가 내의 독점은 의미가 없어진 만큼 정부도 독과점 등 공정거래 관리 문제를 글로벌시장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을 하나의 시장으로 놓고 투자 및 영업활동을 하기 때문에 국내 시장으로 범위를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집중도 강화에 따른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가기 때문에 기업결합 심사 자체를 느슨하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주어진 규정의 틀 안에서 국제 시장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쪽으로 심사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