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 조성 공사가 한창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을 지나다 보면 청사 정문 앞 인도에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이를 바라보며 언뜻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오는 7월 옛 육조거리에 들어설 광화문 광장,그리고 시위.

조선시대의 시위 문화를 생각해 봤다. 창덕궁 앞 신문고를 두드리거나 언덕에서 올리는 횃불.임금의 어가나 정승판서의 가마가 지날 때 북이나 징 꽹과리를 두드리는 격쟁,관청이나 민가 담장 벽에 붙이는 방(榜).신하 등이 조정의 잘못을 시정해 달라거나 자신의 잘못을 벌해 달라며 간청하는 석고대죄(席藁待罪) 등.이 가운데 단연 주목을 끄는 것은 석고대죄다. 짚으로 만든 자리를 펴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엎드려 자신의 허물(罪)에 대해 임금의 처분이나 명령을 기다리거나 자신의 충정을 진언하고 받아들여 줄 것을 간청하는 석고대죄.

석고대죄는 그저 '자신을 꾸짖어 달라,지은 죄에 대해 벌해 달라'는 것으로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린다. 남을 비방하거나 음해하지도 않는다. 허위 사실이나 재물 파손도 없다. 비폭력 평화 시위다. '…를 처벌하라.…는 물러가라' 등 온통 남 탓만 하는 오늘날의 구호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또 화염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 양태와는 거리가 멀다.

흔히 정치권에서 티격태격하며 상대방을 향해 '석고대죄 하라'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석고대죄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탓하는 데서 출발한다. 얼마 전 뉴스에 한 시민이 불타버린 숭례문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숭례문이 어머니인데 잘못 모셔 보냈으니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의미란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참에 우리의 전통적 시위 문화인 조선시대의 석고대죄를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질 광화문 광장에서 그대로 재현해 보자.판정승의 불충을 중벌 해 줄 것,성균관 유생들이 권당을 하며 임금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것,당쟁 파벌을 혁파해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아 달라는 등의 고정 테마를 정해서 말이다. 여기에 시의성 있는 풍자성 현대판 석고대죄를 곁들여 일침을 가하면 어떨까.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처럼 매주 토 · 일요일 상설화해 관광 상품화하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아름다운 시위문화를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가르쳐 주는 산교육의 장이 되는 등 국민 교육적 가치도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다 함께 선조들의 아름다운 석고대죄의 미풍양속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