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의 경제학] 경제한파 허덕여도…내일 하루는 미국이 지갑을 연다
내달 1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프로 풋볼(NFL · 미식 축구)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이 플로리다주 탬파시 레이몬드제임스 구장에서 열린다. 전후 최악의 불황기에 펼쳐지는 축제인 만큼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애리조나 카디널스 간 숨막히는 결전 못지않게 경제적 효과도 관심을 끈다. 경기 침체로 주요 대기업들이 주최하거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파티는 줄었지만,미국민의 열기와 기업들의 광고전은 여전히 뜨겁다. 시청률이 40%를 넘는 단 하루뿐인 '슈퍼 선데이'에 1억명에 달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어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2월에 열린 슈퍼볼 시청자 수는 9750만명에 달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2억명을 웃돈다. 게다가 미국인들 사이에 "슈퍼볼에 등장하는 광고는 재미있다"는 인식이 워낙 강해 광고 효과는 어느 광고보다 높은 편이다. 세계적 광고회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들고,경비 절감이 아무리 중요해도 기업들이 이때만큼은 지갑을 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슈퍼볼의 경제적 가치는 10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로 43회를 맞는 슈퍼볼 중계권을 확보한 NBC방송은 67개 스팟 광고(33분30초 분량)를 팔았다. 30초당 광고단가가 무려 300만달러에 육박한다. 1초 광고비는 10만달러다. 경제 상황은 최악이지만 전년(270만달러)보다 11%가량 광고료가 오른 것이다. NBC는 올해 슈퍼볼로 2억달러 이상의 광고수입을 거뒀다.

전통적인 광고주였던 GM과 페덱스 등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광고 계획을 취소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본게임 스팟광고 2회,프리게임 광고 3회를 내보낸다. 안호이저-부시인베브(맥주),코카콜라와 펩시(청량음료),데니스(레스토랑 체인),페디그린(애완견 사료),텔레포라(온라인 꽃집)도 광고주로 확정됐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픽처스도 광고시간을 사 개봉을 앞둔 영화 예고편을 상영한다.

이들 광고주는 광고전략을 마련하는 데 최근까지 고민했다. 경기 침체로 분위기가 우울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광고를 내보내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차는 당초 본게임 광고로 '제네시스 쿠페'를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스팟광고 1회분을 신차를 구입한 지 1년 이내 실업자가 되면 차를 되사주는 판촉 프로그램인 '현대 어슈어런스'로 바꿨다. 나머지 광고는 '올해의 카'로 선정된 2009 제네시스 세단을 홍보하는 데 활용된다. 록 음악가 빌리 코간을 모델로 내세워 만든 제네시스 쿠페 광고는 게임식전인 쇼 프로그램 광고로 옮겨 소개한다. 카스닷컴(온라인 자동차판매업체)도 침체된 경기 현황을 반영해 신차와 중고차를 매입하는 고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쪽으로 광고 내용을 변경했다.

개인 소비도 반짝 특수가 기대된다. 시청자들은 TV로 슈퍼볼을 즐기면서 식음료와 포테이토칩 등을 주로 먹는다. AC닐슨에 따르면 통상 슈퍼볼 개막을 1주 앞두고 73개 식음료의 매출이 주간 평균 대비 2억6000만달러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테이토칩 업체들은 이때를 대비,한 달 전부터 제품 출하를 늘리고 있다. 탬파 인근 호텔은 1주일 전에 예약이 끝났다. 슈퍼볼 관련해 탬파시를 찾는 사람만 10만명에 달한다.

불황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슈퍼볼의 도박심리까지 잠재우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2주 전 슈퍼볼 대결팀을 가르는 콘퍼런스 챔피언십 경기가 끝난 직후 도박사들은 피츠버그의 우세를 점쳤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뉴욕자이언츠-뉴잉글랜드 간 슈퍼볼에 베팅한 액수는 9500만달러를 넘었다. USA투데이는 불법으로 거래된 판돈까지 합치면 수십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경기와 광고 못지않게 경기 시작 전과 하프타임 공연도 대단한 볼거리다. 올해는 1970,80년대 활약했던 그룹 저니가 프리게임 공연을,미 장년층이 좋아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이 하프타임 공연을 펼친다. 하프 타임쇼는 폴 매카트니(2005년),롤링스톤스(2006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나오지만 출연료가 없는 게 특징이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영광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로 실의에 빠진 미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올 슈퍼볼의 가치는 불황에 오히려 빛날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