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바잔(保八戰)'.최근 중국에 등장한 신조어로,8%대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모드에 돌입한다는 뜻이다. 8%대 성장은 중국 지도부가 설정한 올해 최우선 과제다. 공산당 집권의 안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올해 2400만개 일자리 창출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바오바잔의 결과를 쉽게 예상하긴 어렵다. 중국의 경제학자나 관리치고 8%대 성장률 달성을 자신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4조위안(약 800조원) 규모의 내수부양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시각은 다르다. 모건스탠리가 올해 5.5%의 성장률을 전망하는 등 비관론이 비등하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쓰나미에서 중국만 독야청청 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중국은 지금 경착륙과 연착륙 사이에 놓인 외줄을 위험스럽게 타고 있다"고 말했다.

◆실종된 춘제 대목

지난 28일 베이징 난호베이루에 위치한 가전양판점 다중톈치.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설날)는 이곳에 없었다. TV와 냉장고 에어컨등이 전시된 지하매장엔 단 한 명의 손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종업원들은 매장구석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예 전시용 노래방기기의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종업원만의 춘제'를 즐기고 있었다. 1층 휴대폰 판매점에도 200위안(4만원)대 초저가 제품 전시대에만 손님이 조금 있었을뿐 1000위안(20만원)대 이상의 상품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국 언론들은 춘제 소비가 늘었다고 전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작년보다 훨씬 손님이 없다"는 다중톈치 종업원의 말에선 소비가 실제 늘어났다는 걸 느끼긴 어렵다. "내구 소비재 판매가 급감하고 구매단가가 낮아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중국삼성 박근희 사장)는 데 이유가 있다. 불경기로 고급 제품을 사던 사람들이 중저가 제품으로 발길을 돌리면서,소비지표와 체감 소비경기가 완연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자동차 시장에선 베이징현대차의 '위에똥'(아반떼급) 등 소형차는 인기차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파세트' 등 중형세단 차량은 재고만 쌓이고 있다. 월급을 몽땅 소비한다고 해서 '월광족(月光族)'이라 불리는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 100위안(약 2만원)으로 일주일 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노재만 베이징현대차 사장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9월 이후 5개월간 시장의 패턴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어 소비가 어느 정도 위축돼 있고 또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1분기까지는 이런 혼란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락하는 경제지표

작년 말 경제지표만 보면 중국은 이미 경착륙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작년 4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8%로 7년 만에 6%대 성장률에 진입했다. 1분기 10.6%에 비해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특히 전분기와 대비하면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게다가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에 머물렀다. 작년 2월 8.7%에 비하면 폭락 수준이다. 성장률과 물가가 동시에 급락하며 완연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조짐이 나타났다.

수출은 12월 -2.8%를 기록하는 등 두 달 연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작년 12월 산업생산 증가율은 5.7%로 1월부터 11월까지의 월 평균 13.7%를 크게 밑돌았다.

숫자로 볼 수 없는 요소들도 불안감을 더해준다. 중국 지도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업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파산기업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홍콩 언론들은 작년 11월 말 현재 광둥성에서만 7만여개의 기업이 무너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900만명의 농민공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610만명의 대학 졸업생들은 당장 갈 곳이 없다. 중국 정부가 내수부양을 위기 타개의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내수가 살아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갈 곳이 없는 1100여만명의 실업자들이 내수부양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줄 것인지가 불확실하다. 불경기에 사회적 불안까지 겹칠 경우 중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부양 올인하는 중국 정부


농촌에서 TV나 세탁기 휴대폰 냉장고를 살 경우 구매가격의 13%를 보조해주는 '가전하향(家電下鄕)' 정책이 내달 1일부터 전국에서 시행된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10대 산업 지원방안도 업종별로 속속 발표되고 있다. 수출 상품의 세금 환급률도 대폭 올려주고,외국인이 집을 살 경우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규제도 없앴다. 경기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몽땅 풀고,기업에 대한 지원은 부활 중이다.

약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14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가전하향' 정책으로 저가 가전제품의 판매는 증가 추세다. 1월 세탁기 판매는 12월보다 4배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경제를 살리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세계은행은 당초 9.2%로 잡았던 올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7.5%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6.0%,피치는 7.2%를 제시했다.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쥔은 "8%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4조위안의 투자로는 크게 부족하다"며 "기업 투자가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8% 성장률을 지킨다면 올해 재정적자는 1조위안을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8% 성장률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면 올해 성장률 목표를 6~7%로 낮추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