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내외 자동차 판매가 동시에 줄어들자 국내 완성차 5개사는 징검다리 연휴를 계기로 근로자들을 열흘씩 휴가를 보내거나 잔업을 없애는 등 일제히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도 휴무를 늘리는 방식으로 감산 대열에 합류했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지난해 12월 산업(광공업 기준) 생산 18.6% 감소는 끝없이 추락하는 실물경제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제조업 깊은 '겨울잠'

나쁜 기록 경신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산업생산량 증가율은 -14.0%로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저치였는데 한 달 만에 -18.6%로 악화된 것.생산과 더불어 수출용 상품 출하(-15.7%)와 내수용 출하(-15%)도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자 공장가동률은 1980년 9월(61.2%) 이후 최저치인 62.5%로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이 감산에 나섰지만 재고가 불어나는 것(전년 동월 대비 7% 증가)을 막지는 못했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대한민국을 지탱해오던 제조업이 깊은 겨울잠에 빠진 것이다. 서비스업 부가가치 생산 역시 전년 동월 대비 1% 줄어 전달(-1.6%)에 비해서는 감소폭을 줄였지만 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큰 문제는 실물경기가 언제 겨울잠에서 깨어날지 기약하기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투자마저 꽁꽁 얼어붙어서다. 지난달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 24.1% 감소했다. 앞으로의 설비투자액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기계수주량 역시 -38.4%를 기록,큰 폭으로 뒷걸음질했다. 과거 경기 회복 때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건설업도 좋지 않다. 지난달 건설공사는 8.7% 감소해 두 달 연속 줄었다.


◆1월 무역수지 악화 예상

생산 차질은 이달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정부와 무역협회 산업계의 전망을 종합하면 1월 자동차 전자 등 주력 수출품목의 감산 여파로 수출이 전년 같은 달보다 30억달러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 1월 무역지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체 무역적자는 1월에 30억~40억달러 선에 이른다는 전망인데 고유가 충격이 무역수지에 본격 반영됐던 지난해 1월(40억4000만달러)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날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는 64억10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낸 것은 1997년(-82억9000만달러) 이후 처음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경상수지를 지탱해주던 상품수지의 흑자 규모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추경 카드 '만지작'


한국은행도 비상상황임을 인정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제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하면서 정책 유효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기준금리의 조정시기와 폭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현재 연 2.5%인 기준금리를 더 내려 연 2% 이하까지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환매조건부채권(RP)매입 확대 등의 공개시장조작과 총액한도대출 등을 통해 자금공급이 원활치 않은 곳으로 돈을 더 흘려보내는 정책도 검토 중이다. 이 총재는 특히 "금융안정을 위해 대규모 유동성을 신속히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발권력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바빠졌다. 경제부처 안팎에서는 산업생산이 3개월 연속 큰 폭으로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차기현/박준동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