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자욱하던 1943년 마티스는 폭격을 피해 니스(Nice)의 시미에 언덕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 레지나 호텔을 떠나 방스(Vence)의 한 빌라로 피신 중이었다.

어느 날 근처에 사는 한 소녀가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마티스를 찾아왔다. 마침 마티스의 비서는 부재 중이었기 때문에 이 아가씨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열린 통로를 거쳐 마티스의 작업실로 유유히 들어왔다.

그리고는 노대가에게 대뜸 말했다. "제가 그린 그림 몇 점 가져왔는데 보시겠어요?"

얼떨결에 낯선 침입자를 만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다,당신 누구야?"

"아뇨.전 그저 당신에게 그림 몇 점 보여드리려는 것뿐이에요. "

"난 그런 거 관심 없소.어째서 사전에 연락하지 않았소? 그리고 당신이 대체 누구란 말이오?"

노화가의 냉담한 반응에 기분이 상한 소녀는 입을 삐쭉 내밀고는 "미안해요. 하지만 이거 그래봤자 2분밖에 안 걸려요. 당신은 그저 내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만 얘기해주시면 돼요. "

"…."

도무지 대책이 안서보이는 이 막무가내 소녀가 만약 후진 양성을 극도로 꺼렸던 대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면 믿겠는가? 그렇지만 사실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티스는 평소 예술가는 기성의 관습적 사고와 눈이 아니라 마치 어린 아이가 사물을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대상을 응시해야 하며 이것을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사고나 행동양식이 사회화되지 않은 아이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기에 그에 대한 반응 혹은 행동은 즉흥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즉흥적 반응은 어른의 시각으로 볼 때는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마티스는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격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바를 쫓아 작업실에 '무단침입'한 이 소녀의 유아적 순수함에서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싹을 발견했던 것이다(아쉽게도 우리는 이 소녀에 대한 후일담을 확인할 수 없다).

마티스가 1917년부터 1954년 세상을 뜰 때까지 머물렀던 니스는 어린 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순수한 감성을 개화시키고 수많은 열매를 맺게 한 풍요의 땅이었다.

마티스가 니스를 처음 방문한 것은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기관지염을 앓고 있던 그에게 의사가 지중해의 바다 바람을 쐬도록 권유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의 따뜻하고 눈부신 태양에 매료된 그는 아예 그곳에 눌러앉아버린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의 '쪽빛 해안' 코트 다쥐르에 위치한 니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지였던 고도로 19세기부터 휴양지로 이름난 곳이었다.

1820년 프랑스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해변에 프롬나드 데 정글레(Promenade des Anglais),즉 '영국인 산책로'를 조성했는데 이때부터 도시는 급속한 팽창의 길을 걷는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이곳은 북유럽의 왕족 및 귀족들의 겨울 피한지로 명성을 날렸다.

이를 계기로 곳곳에 호화로운 별장이 들어섰는데 해변과 시미에 지구에는 이때 조성된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마티스가 니스에 와서 처음으로 머문 곳은 바로 영국인 산책로에 면한 해변의 호텔들이었다.

파리의 회색빛 하늘과 습기로 가득한 불투명한 대기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 니스의 투명한 대기와 작열하는 태양은 그의 색채와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지중해의 맑은 대기는 사물의 형태와 색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파리의 우울한 청색은 이곳에서 눈부신 에메랄드로 빛났고 사물은 저마다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눈부신 태양은 강렬한 빛의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댔고 물체들은 저마다 반사광을 뿜어댔다. 파리의 공간이 회색빛 운무 저편으로 사라지는 베일에 싸인 공간이라면 니스는 빛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투명한 공간이었다.


마티스는 호텔 창밖을 내다보며 자연의 경이를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춤추는 파도와 부서지는 은빛 포말,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초록빛 야자수와 오렌지 톤의 지붕들이 빗어내는 눈부신 광경은 그의 망막에 드리운 이성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시시각각 변모를 거듭하는 바닷가의 감성적 풍경이 촉발하는 감흥은 그때그때 색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즉흥적인 것이었다. 그것을 음악에 비유하자면 재즈와 같은 것이었다.

즉흥성을 중시하는 재즈.그래서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그 재즈 말이다. 똑같은 음악이 연주자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항상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그 '불협화음'의 놀라운 협화(協和) 말이다. 마티스는 니스의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한 재즈적 감흥을 작품을 통해 시각화했다.

1943년부터 제작에 들어간 '재즈'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직접 쓴 글과 함께 색종이 오리기 작품 20점을 삽입한 이 책은 출판업자의 제의가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평소 그가 갖고 있던 일상의 음악적 느낌을 작품화한 것으로 휠체어에 몸을 의존해야 했던 말년의 명작 중 하나다.

이 책에 실린 '서커스'(도판 참고)라는 작품을 보면 전체적으로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의 사선 막대가 대칭적 짝을 이루고 있고 다시 왼쪽 상단의 가로 막대와 오른쪽 하단의 막대가 또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선 막대는 서로 다른 색채와 형태로 일종의 변형을 이루고 있고,가로 막대 역시 같은 붉은 색을 띠고 있지만 형태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엄격한 음률을 중시하는 고전음악이라면 사선막대의 색채와 형태가 같아야 하겠지만 마티스는 막대의 색채를 흰색과 노란색으로 다르게 표현하고 막대 속의 형태도 달리함으로써 재즈의 즉흥적 감흥을 형태와 색채의 즉흥성으로 치환하였다. 이 작품에서 모든 형태는 단순화되었다.

춤추는 곡예사의 형태는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어설픈 모습이고 네 개의 막대와 '시르크(Cirque,서커스)'라는 프랑스어 알파벳도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놀랍게도 치기어린 외양과 원색의 색채는 보는 이에게 의외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것은 바로 화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화면에 독창적인 질서를 구축하고 색채와 형태를 연마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침으로서 가능했다. 그것은 언제든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노대가가 말년에 도달한 예술적 이상의 세계였다.

'아이의 눈,어른의 마음' 이것이 예술가가 갖춰야 할 덕목임을 마티스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죽음을 불과 1년 앞두고 쓴 '아이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기'라는 글을 통해서였다.

그것은 노대가가 빛과 바다의 도시 니스에 온 지 36년 만에 이룩한 '미의 낙원'의 축성을 알리는 일종의 송가였다.

아마도 우리는 그 미의 이상향에서 감성의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재즈의 즉흥적 리듬에 맞춰 춤을 추어도 좋으리라.

정석범 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