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위기 쓰나미는 금융위기 쓰나미보다 몇백 배나 더 큰 재앙이 될 겁니다. 이에 대처하려면 각 나라가 글로벌 컨센서스를 도출해야 하고 우리도 선제적으로 마련한 녹색성장 전략을 더욱 구체적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현 녹색성장포럼 대표(73).사무실은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 서적들로 가득했다. 주제도 지구 온난화와 환경 관련 자료,중국 경제 전문 서적부터 조선시대 정치인인 정도전에 대한 연구서와 한 · 일 관계사 서적까지 다양했다. 김 대표의 관심사가 얼마나 넓은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환경 문제를 선도적으로 주창한 선진국보다 에너지와 식량 자급률이 훨씬 떨어지는 데다 세계 최대 공해 유발 국가인 중국에 인접해 있다"며 "환경 문제는 우리에게 훨씬 절박한 문제"라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지난해 9월 녹색성장포럼을 창립하며 민간에서 녹색성장 정책에 힘을 싣고 있는 김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정부에 정책 자문역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처 장관과 언론사 회장,대학교 총장,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셨는데요. 환경 문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인연이 깊습니다. 제가 1968년에 한국미래학회를 창립한 멤버입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그즈음 외국에선 로마클럽 보고서(1972년)가 나오며 성장의 한계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1979년에는 월드뱅크 산하 조직인 국제개발소사이어티에 참가했는데,당시 월드뱅크의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이 '현재의 산업개발 방식으론 환경 문제의 어려움이 필연적'이라고 지적하더군요. 이런 계기로 일찍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990년 과기처 장관을 맡으면서 환경문제 연구개발(R&D)을 강조하며 환경 관련 연구소도 만들었습니다. "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나오는 데도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대통령의 8 · 15 경축사에서 '녹색 성장'이란 단어가 처음 나올 때 제 의견을 좀 보탰을 뿐입니다. 국가 원로라고 청와대에서 두어 번 부르시기에 참석해서 '녹색 성장'과 관련한 생각을 대통령께 전한 정도입니다. "

▶한국 사회에서 녹색 성장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동안 경제 성장과 환경을 보전하는 것은 충돌적인 개념이었죠.이런 사고 방식의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곳이 한국입니다. 지금까지 환경 이슈는 스웨덴이나 독일,미국 같은 선진국 진보학자들이 선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 문제는 선진국 문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진국 치고 식량과 에너지 자급자족률이 높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는 나라 중 에너지와 식량의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국토가 넓어서 공장이 강이나 토지를 오염시키더라도 원상회복에 유리한 경우가 많죠.상대적으로 우리가 타격이 더 심한 편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환경 문제에 가장 절실하게 당면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녹색성장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 어떤 면에 중점을 둬야 할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관계 기술이나 산업은 열악한 상황입니다. 갑자기 녹색 규제를 시행하면 환경 관련 기술은 100%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우선은 녹색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실태부터 명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각 가정에선 하루에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얼마나 되는지 계절별로 파악할 수 있어야죠.주요 기업들도 온실가스 하루 배출량이 얼마인지 등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지,가정 부문의 생활 양식을 어떻게 고칠지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

▶현재 정부가 주창한 녹색성장 정책에 보완할 점이 적지 않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한국 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빨리 녹색 성장을 선언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녹색성장 분야를 빨리 발전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한국적인 녹색성장 모델이 나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정확한 실태를 파악한 뒤 그에 걸맞은 정책을 만드는 게 시급합니다. 이와 함께 일반 국민이 따를 수 있는 실행 모델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새마을운동 하면 지붕 개량을 떠올리듯이 녹색 성장에 대해 간단하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

▶한국의 특색에 맞는 장기적인 녹색성장 정책으로 조언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한국이 처한 삶의 조건은 선진국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독자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인류에게 한국이 길을 열어 주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하겠죠.어차피 한국의 식량자원 자급이 불가능하다면 통상적인 먹거리는 수입하고 대신 한국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은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농산물=100% 유기농'이란 브랜드를 만들어서 고급 식품으로 판매하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해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

▶한국은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인접해 있는데요.

"중국은 1인당 경작 면적,삼림 면적이 한국보다 적죠.대국이라고 하지만 인구가 너무 많아 환경과 에너지 측면에선 소국입니다. 우리로선 불행한 일이죠.중국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인구 1명당 1대 가까이 차를 보유하게 되면 현재 전 세계가 1년간 소비하는 원유량을 중국 혼자 1년 만에 거덜내게 됩니다. 현재와 같은 자동차 소비 방식을 미래에는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셈이죠.이제 글로벌 컨센서스,글로벌 이니셔티브가 나와 인류가 실질적인 지구촌이 되어서 대책을 마련할 때입니다. "

▶녹색 성장을 위해선 우리의 생활 방식도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에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인구가 1000만명 이상 되는 국가 중 도시화율이 90%가 되는 나라도 한국밖에 없습니다. 인구의 도시 집중도도 일본,멕시코보다 훨씬 높고요. 도로와 도시 정책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아파트 위주 주거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거 문화는 인류사 이래 가장 편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편리만 추구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앞으로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고쳐야 합니다. "

▶아직 일반 사회에서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환경 관련 사회단체(NGO)들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여전히 반(反)정부를 해야 환경의 주류라는 정당성이 서는 것 같은 문화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정부는 녹색 성장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세한 실태는 모르고 있고요. 바로 이것이 한국 정부와 민간의 간극인데요,이제는 이를 메워야 합니다. "

▶최근의 금융위기가 환경 움직임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요.

"만약 환경재앙 쓰나미가 온다면 금융 쓰나미의 몇백 배 재앙이 될 것입니다. 금융 위기는 절약하고 소비를 줄여 넘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환경 쓰나미는 몇십억 인류가 그대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환경 문제에 대처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

김동욱/정동헌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