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 교수 시절 학회 참석 등으로 해외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짬이 있을 때 가끔 그 도시의 미술관을 찾아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곤 했다.

그 중 입체파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그만의 창의적인 3차원적 인물 묘사로 유명하지만 사실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기법과 주제가 다양하게 변하는 다작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다작 비결은 독창적인 3차원 묘사법에 있다. 그는 명작으로 불리는 그림의 소재,구도,배치를 벤치마킹해 마음껏 재생산했다. 그가 기존 화가들처럼 사실주의적 기교를 바탕으로 소재,구도를 짜 내는 레드 오션(Red Ocean)에서 승부했다면 피카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르누아르,뭉크,고갱,고흐 같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특유의 표현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창안해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융합의 천재인 피카소의 독창성과 변화에 대한 뛰어난 능력은 최근 이종 산업 간의 융 · 복합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는 우리 기업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융 · 복합화는 고객과 시장의 전략적 가치를 변화시키고 있으며,이는 곧 산업의 또 다른 진화를 이뤄 낼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업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융 · 복합 시대에 우리 기업들은 영유하는 사업만이 아닌 전체 산업 관점에서 핵심 역량과 중 · 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핵심 기술의 분류와 정의,자원의 분배 방식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필자 회사에서도 시장에 대한 재정의와 열린 연구개발(Open R&D)을 통해 시장 개념을 확장,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또 융 · 복합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재들 스스로 모든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상상력이 경쟁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가 트랜지스터의 가치를 이해하고 세계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를 상용화해 큰 히트를 쳤고,미국의 실업가 록펠러가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자동차의 가치를 이해하고 석유회사를 설립해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켰듯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융 · 복합이 가지는 의미는 수용,흡수,결합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분야의 기술이 중심이고,다른 기술들은 주변의 기술이라 여기며 자신의 것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만 여겨서는 융 · 복합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때로는 역발상을 해야 하며 주요 가치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 자신의 가치와 위상을 재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객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역량 확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